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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어트 전문가? ‘행복 코디네이터’랍니다”
  • 2017.01.19.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나이를 먹을수록 대개 열정의 ‘밑천’은 다 하기 마련이다. 호기심의 비등점도 약관(弱冠)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경험은 쌓이겠지만, 어쩌면 정열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는 희생(?)을 치르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년이 코 앞인 장성한 아들을 둔 강태은은 달랐다. 군살 한 줌 없는 날렵한 몸으로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전력질주하는 청년 마라토너 같았다. 매일매일 자신의 육체가 아닌 남의 몸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 타인의 장밋빛 미래를 위해 매일을 고군분투하는 사람, 인간의 몸에 대해 하루 24시간 고민하는 사람…. 프렌닥터연세내과 비만클리닉 부원장인 강태은 씨를 만났다. 비만상담 전문가인 강 부원장은 인간의 몸과 열정, 그리고 거기서 오는 인생의 의미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다이어트 전문가와 더불어 ‘행복 코디네이터’를 표방하는 그의 멘트는 참 솔직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빼빼 말랐던 꼬맹이, 식탐의 덫에 걸리다=해부학이 필요없을 정도로 갈비뼈가 앙상했던 꼬마 강태은은 중학교 시절 패스트푸드를 접하며 살이 불었다. 강 부원장은 “당시 한 접시 50원하던 떡볶이에 빠졌어요. 집에 오면 빵과 과자, 우유, 요구르트 등 엄마의 사랑만큼 간식도 풍성했죠. 그때 유행했던 ‘패밀리’라는 햄버거와 ‘코니 아일랜드’ 아이스크림도 제 통통한 몸매 완성에 한몫 했습니다”라고 웃었다.

그래도 민감한 사춘기였다. 그때 소녀의 감성을 파괴하는 친오빠의 날카로운 비수(?)가 날아들었다.

“어느날 오빠가 저한테 ‘넌 인간의 탈을 쓴 돼지냐? 돼지의 탈을 쓴 인간이냐’고 했어요. 어떤 날은 ‘길에서 봐도 아는척 하지 말라’며 핀잔을 줬죠.”

살이 통통한 동생에 대한 구박(?)이었다. 하지만 소녀에겐 자존심을 한방에 무너뜨리는 돌직구로 다가왔다.

그날 이후 강 부원장은 대학에 가면 꼭 살을 빼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화여대 1학년 시절, 두 번의 다이어트를 통해 드라마틱한 변신을 이뤘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확실하게 했고, 완벽주의 기질을 갖고 있다고 뽐내던 때였다.

강 부원장에겐 다이어트의 목표도 ‘모델급’이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실제 강 부원장은 두 번째 다이어트 이후 길거리에서 청바지 모델 제의를 받기도 하고 뭇남성들의 숱한 데이트 신청을 받으며 행복한 20대를 보냈다.

▶엘리트 조세연구원, 다이어트 전문가로 환승하다=강 부원장은 어릴 적부터 숫자놀음에 능했다. 명료하게 떨어지는 단 하나의 정답을 위해 골몰하는 시간이 좋았다. 대학시절에는 입시 수학 과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해결하기도 했다. 그는 석사 졸업 후, 이러한 능력을 살려 조세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게 됐다. 그러나 직업으로서의 숫자는 그리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다.

“‘태은아, 가슴이 떨리니?’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아니었죠. 수학과외 시절이 떠올랐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그것이 실력으로 바뀌었을 때의 벅찬 감격이 그리웠죠. 다이어트에 성공해 짜릿했던 경험도 잊을 수 없었고요.”

생각을 바꿨다. 길은 다시 정하면 되니까. 입사 1년 만에 강 부원장은 다이어트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왜 그랬는지는 묻지 마세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표를 쓴 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건너가 비만치료 전문 과정 연수를 시작했다.

“전문의나 병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저만 아마추어였어요. 비용도 많이 들 뿐더러 정보가 많지 않아서 당시는 이 교육을 받는 사람이 한국에 거의 없었어요. 전 제가 번 돈을 물질보다는 경험과 지식에 쓰는 편이라, 비용이 아닌 투자를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긴 시간 예습 복습을 했고 밤새 호텔방에서 A4용지에 질문을 만들어 교수에게 궁금증을 전달하기도 했지요. 여기서 배운 걸 아직도 활용하고 있어요.”

경험 끝에 얻는 유무형의 재산은 새로운 삶을 사는 용기를 줬다. 이후 강 부원장은 2002년부터 비만클리닉에서 상담에 주력해오고 있다.

강 부원장은 해외여행을 가면 현지의 식문화와 식재료를 연구하곤 한다. 호텔이 아닌 레지던스에 묵고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살피고 재료의 라벨 정보를 모은다. 직접 요리를 해보고 영양을 파악하는 것도 일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를 활용해 유학생 환자, 장기출장을 해야만 하는 환자들에게 알맞은 처방을 내린다. 그만의 열정이다.

▶다이어트 보다 먼저인 것은 소통=“사람들이 살이 찐 이유는 단순히 많이 먹어서가 아니에요.”

강 부원장 말의 핵심이다. “에너지는 섭취와 소비라는 시소게임 사이에 스트레스라는 근본 원인이 있어요. 스트레스를 이겨낸 뇌는 포상을 원합니다. 이는 달고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으로 이어지고 음식중독을 부르죠. 식욕을 억제하기 전에 스트레스의 근본을 찾아내는 게 먼저에요. 스트레스에 저항할 수 있는 행복한 요소가 많으면 다이어트도 쉬워집니다.”

강 부원장을 찾아온 환자는 음식을 1등급~3등급, 최악의 X등급으로 분류해 영양 가이드를 만들고 단계마다 실생활과 접목한 다이어트 수칙을 부여받는다. 먹는 것을 죄악시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뻐질까’를 연구하며 뇌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환자는 본능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키워 나간다.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 ‘트리플 다이어트’ 이론이다. 트리플 다이어트는 기존의 다이어트 핵심인 3요소, 즉 음식, 운동, 생활습관에서 벗어나 에너지섭취, 에너지소비, 스트레스 3가지가 체중조절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강 부원장은 15년 동안 무려 5000명 이상의 비만 환자와 상담했다. 지금까지도 그는 환자들과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그들을 먼저 ‘이해’ 하려고 한다.

“10대는 학업, 20대는 직장에서의 관계, 30대가 되면 육아와 집안 문제, 40대 이후에는 알코올 의존과 상실감 등…. 개인마다 우울, 좌절, 분노 등 각각의 사연이 있어요. 살이 먼저가 아니라 내면의 치유가 먼저죠.”

환자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 그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리는 일, 강 부원장의 사명이자 운명이다.

▶다이어트를 넘은 모티베이터가 꿈=상담실 한 켠, 그의 책장에는 매일 스크랩한 논문과 공부한 노트 수백 권이 빼곡하다. 획 하나도 흘려쓰는 법 없이 성실히 써내려간 정자(正字)를 보니 ‘이 정도면 병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런 노고와 그동안의 사례가 모여 ‘상위 4%를 만드는 1등급 다이어트’라는 책이 탄생했다. 여기에 들어가는 삽화는 그가 손수 그렸다.

환자의 식사노트를 펴봤다. 첨삭은 필요없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꼼꼼하다. 빨간펜으로는 주의사항을, 파란펜으로는 키포인트만 집어 빼곡하게 정리했다.

“하루에 펜 하나를 다 쓸 때도 있다니까요”라고 그가 웃어보였다.

아랍계 여성 환자가 내원했을 때는 아랍어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구글 번역기를 동원해가며 소통했던 일화도 있다.

“환자분이 쓴 식사일기를 전혀 알아볼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번역기를 이용해 하나하나 해석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다시 제 처방은 영어로 번역해 전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분은 결국 10kg나 체중감량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의 작은 병원에서 치료와 상담을 받던 아내가 불안해 대기실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저를 보던 남편도 결국 3개월 후는 땅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큰 절을 하고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살을 뺀 환자분은 일도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됐고 남편과의 사이가 각별해졌다면서 선생님처럼 따뜻한 한국인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너무 기뻤죠. 그날은 정말 태극기를 달고 애국가라도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저 잘 하지 않았습니까?”

‘태은 선생님’이란 말로 시작해 환자들이 전하는 편지를 통해서도 그는 큰 감동을 얻는다.

“함께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고 같은 입장이 돼서 그 사람의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보는 시간. 세상이 말하는 시간의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전 많은 낭비를 한 걸지도 몰라요. 그러나 이런 세속적 셈법으로는 제 일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변화시켰으니까요. 한 사람의 인생 전환점이 되었잖아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면 그 시간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요?”

강 부원장의 속내는 이때 나왔다. “다이어트의 근본 원인이 스트레스입니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 행복의 요소를 찾도록 도와주는게 저의 진짜 꿈입니다.”

아픈 자의 신음과 절박한 호소에도 무심한 의사가 많은 세상, 그냥 담담히 차트를 써내려가며 기계적인 처방을 내리는 의사에 상처받은 기억이 넘치는 세상, 그게 우리 세상이다.

하지만 ‘인간 강태은’은 달라보였다. 환자와 함께 맞춤형 해법을 찾고 다이어트를 넘어 새 꿈을 자극하는 모티베이터(Motivator)로서의 사명감도 보였다.

일주일 식단을 미리 짜놓고 요리와 미각의 행복을 느낀다는 식탐가, 고3 아들에게 미적분을 가르친다는 열혈 엄마…. 여러가지 앞뒤 맞지는 않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제 손 좀 보세요. 상담하는 이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조언을 쓰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하루 볼펜 한자루도 모자라요.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몸, 건강한 몸을 위해 제 열정을 바치는 것,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요?“

얼마나 글씨를 썼던지 가운데 손가락이 휜 게 확연했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삶을 조력한 훈장과 다름 없었다.

/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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