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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미식문화 전도하는 ‘르꼬숑’ 정상원 셰프,
  • 2017.03.24.
-프랑스 요리, 각 풀고 힘 뺍시다…르꼬숑의 ‘구 드 프랑스’
-5대륙 2000여명 셰프 참여한 ‘구 드 프랑스’
-프랑스 미식문화 전세계서 즐기는 축제


“프랑스 사람들도 이거 잘 못해요. 파리 레스토랑 가면 달팽이 많이 날아 다닙니다. 괜찮습니다”

‘르꼬숑’ 정상원 셰프가 무심하게 던진 메시지는 막상 세심했다. 에스까르고(달팽이 요리)를 마주한 사람들이 에스까르고 체르(집게)를 쥐고 고군분투하던 순간이었다. ‘혹시 지금 나만 못하나?’ ‘달팽이 튈 것 같은데…’ 라는 염려는 무색해졌다. 
‘르꼬숑’ 정상원 셰프가 ‘구 드 프랑스’ 행사에서 선보인 ‘서울의 봄’ 요리를 설명하고 있다. 정 셰프는 각 잡힌 프렌치 정찬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프랑스 가정식을 추구한다

삼청동 ‘르꼬숑’에서는 지난 22일 저녁 ‘구 드 프랑스 2017’(Goût de France) 행사가 열렸다.

영어로 ‘굿 프랑스’(Good France)라는 뜻을 가진 ‘구 드 프랑스’(Go^ut de France)는 프랑스 정부가 자국 식문화를 알리기 위해 주관한 미식 축제이다. 프랑스 외무성 국제개발부와 국제 셰프 위원회가 주관하고, 미쉐린가이드, 에어프랑스, 르몽드, 르피가로가 후원한다. 지구촌 5대륙 2000여 명의 셰프가 한날 같은 테마의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는 방식이다. 올해의 미션은 3가지였다. 현지에서 생산된 제철 재료로 만들 것, 지방 설탕 소금을 되도록 적게 사용할 것, ‘잘 먹는다’는 정신과 환경을 존중할 것.

국내서는 정상원 셰프의 ‘르꼬숑’을 비롯한 전국 스물 두 곳의 레스토랑과 요리학교가 참여했다. 
‘르꼬송’이 선보인 ‘서울의 봄’ 요리

정상원(39) 셰프는 르꼬숑의 오너셰프다. 그는 고려대 생명과학부 시절, 식품공학 수업을 듣던 중 요리에 흥미를 느꼈다. 프랑스에 살던 여동생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프랑스 음식을 접했고 자연스레 프랑스 요리를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미술적 재능과 남다른 미각을 지녔던 그는 ‘맛있고 몸에 좋으면서도 아름다운 요리를 해보자’ 마음먹고 2010년, 도곡동에 프렌치 비스트로 르꼬숑을 열었다. ‘프랑스 가정식’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미각 노마드족의 발길이 이어졌다. 2013년에는 삼청동 가정집을 개조해 확장 오픈했다. 가장 ‘집’다운 곳에서 프랑스 가정식을 내게 된 것이다.

‘구 드 프랑스’에 참가한 르꼬숑은 ‘서울의 봄’이라는 테마로 전채요리부터 디저트에 이르는 11가지 음식과 와인, 꼬냑을 포함한 7가지 주류를 선보였다. 음식은 △봄날의 포타지(수프) △야콘 샐러드 △부르고뉴풍 에스까르고 △프로방스풍 홍합 △솔 뮈니에르 △가리비 △꼬뜰레뜨 다그뇨 △까술레 △치즈 △크레프 △브라우니 순으로 나왔다. 음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섬세한 마리아주(궁합)로는 △식전주 까시스 키르 △오스트리아 스파클링 △시칠리 피노그리지오 △가스고뉴 소비농 블랑 △랑그독 루시옹 레드 △사과와인 시드르 △꼬냑이 준비됐다. 
미식축제 ‘구 드 프랑스’를 알리는 포스터가 삼청동 ‘르꼬숑’ 앞에 붙어있다

이날 8명의 초대손님은 길쭉한 식탁에 나란히 앉아 프랑스 음식을 나눴고 눈을 맞추며 술잔을 부딪혔다. 정상원 셰프는 음식을 내올 때마다 야심찬 신입사원을 소개하듯 이야기를 풀어냈다. 가장 시선이 집중된 건 프렌치 미식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달팽이 요리, ‘에스까르고’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번 에스까르고는 프랑스 브루고뉴 지방의 느낌을 살렸습니다. 브루고뉴는 한없이 평화로운 도시죠. 마치 ‘전주비빔밥’ 처럼 각각의 재료가 어우러져 하나의 맛을 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프랑스 레스토랑에 온 카사노바들은 여성을 향해 달팽이를 조준하기도 해요. 맘에 든다는 표시죠. 우연이라고 믿을 만큼 정교한 기술이 들어갑니다” 위트있는 정 셰프의 해설은 미식에 날개를 달고 감각을 깨웠다.

식사는 3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조리법은 정통 프랑스 스타일이지만, 식재료는 모두 국내산 특산물을 사용했다.

감자 프라이(fried) 대신 로스트(roasted)로 칼로리를 낮춘 ‘프로방스풍 홍합’, 포항산 가자미로 로컬감을 살린 ‘솔 뮈니에르’가 식탁에 올랐다. 파삭한 껍질과 탱글한 속살이 포항초 이불을 덮고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함께 한 가스꼬뉴 와인은 다음 요리에 대한 기대를 재촉했다. 당일 아침 통영서 상경했다는 비단가리비는 진귀할 정도로 신선했다.

메인 디시는 ‘꼬뜰레뜨 다그뇨’(양갈비)가 장식했다. 어린양을 사용해 부드러움을 극대화했고 오랜 시간 졸인 와인소스로 풍미를 더했다. 혀끝에 닿는 묵직한 달큰함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양에서 양냄새가 나고 소고기에서 소고기 냄새가 나는 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비리거나 누린내가 나면 문제이지만 재료 고유의 향이 나는 것은 풍미죠” “와인을 어렵게 공부하지 마세요. 쇼비뇽, 루시옹 이런거 모르면 어떻습니까. 와인은 그냥 술이에요. 좋은 사람과 함께 마시고 행복해지기 위한 술입니다. 중요한 건 와인의 종류나 가격이 아니라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샹떼!(건배)’라고 외치는 겁니다. 말로 하지 못한 무언가를 눈으로 전달해 보세요”

편견을 깨고 미식을 북돋는 정 셰프의 말이 ‘프알못(프랑스 음식을 잘 모르는 사람)’ 기자를 위한 격려로 느껴졌다.

빈 그릇이 쌓이고 와인잔이 거듭 채워졌다. 생면부지였던 이들은 대화가 무르익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왜 프랑스 사람들이 식사 때마다 와인을 마시는지, 왜 와인을 ‘훌륭한 음식의 반려자’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랑스 요리의 문턱을 낮추는 게 목표에요. 힘 빼고 각 풀고 프랑스 미식문화를 즐기자는 거죠. 보시(布施) 중 가장 큰 보시는 밥보시 아니겠어요?”. ‘프랑스 요리답지 않게’ 푸진 상을 차려주던 그가 활짝 웃었다.

김지윤 기자/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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