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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방ㆍ맛집 넘치지만…우린 그간 음식의 주인이 아니었다”
  • 2017.03.27.
-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김원일 사무총장 인터뷰

[리얼푸드=박준규 기자] 과연 쿠바에 맥도날드 매장이 문을 열까. 올해 주목받는 국제 뉴스 가운데 하나다. 쿠바는 지난 수십 년간 바깥 세계의 돈을 철저히 거부했다. 하지만 앞으로 거대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온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재작년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며 이 예측에 힘을 실었다.

다국적 외식 프랜차이즈는 우리 입맛을 비슷하게 길들인다. 세계 어떤 매장을 가든 균일한 맛을 내는 빅맥이 상징적이다.

“그러면서 지역마다 고유한 작물, 조리법, 음식이 획일화됐어요. 가공첨가물이 발달하면서 파리든 한국 소도시에서든 비슷한 식재료를 쓴 비슷한 맛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거죠” 지난 22일 만난 김원일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사무총장이 유독 힘주어 말했다. 슬로푸드협회는 ‘다양성 있는 식사’를 외치며 활동하는 국제단체다.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김원일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사무총장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슬로푸드협회가 조직된 배경은?

▶김 총장 = 슬로푸드 운동은 86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맥도날드의 진출에 반대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연대한 게 시초다. 89년에 국제민간기구로 몸집을 키웠다.

길게 보면 산업혁명 이후는 곧 먹을거리의 산업화 과정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와 경제적인 가격이 중시되면서 먹거리도 하나의 상품이 됐다. 자연스레 이 과정에 어울리는 작물이 선택적으로 대량 재배됐고 그러면서 종(種) 다양성이 소멸됐다. 지역별로 다양한 조리법과 음식도 많이 사라졌다. 이게 우리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지점이다. 다양한 식생활을 존중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알리려하고 있다. 식생활·식문화에 초점을 맞춘 ‘환경단체’로 이해하면 된다. 국내에선 2007년 처음 협회가 설립됐고, 현재 회원은 800여명 정도다.

-대표적인 활동은?

▶ ‘맛의 방주’(Ark of Taste)다. 전통 음식, 식문화를 보전하는 프로젝트다. 값싸고 편리한 가공식품에 밀려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식품을 기록하고 같이 먹는 활동이다. 국내에선 55개 종을 발굴해서 등재했고 세계적으론 4200여종이 등록됐다. 국내에선 ‘제주 푸른콩’과 ‘앉은뱅이 밀’이 대표적인 작물이다. 제주도에만 12개 종이 등재돼 있는데, 고립된 섬이라서 여전히 지역성 있는 먹거리가 비교적 많다. 토종 식품 농부들을 미디어와 유통업계에 연결해서 판로를 여는 작업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협회의 존재감이 부각되지 않았다.

▶ 2007년부터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지만 임팩트가 부족했다. 그동안의 활동이 주로 행사 개념이었는데, 앞으론 일상적인 행사로 꾸미려고 한다. 요즘은 (TV에 출연하는) 요리사들이 먹는 얘기의 실마리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다양한 식재료를 쓰고 많은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이달부터 ‘맛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요리사와 농부(생산자)가 시민을 모아놓고 식재료와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농부는 식재료를 키우고 수확하는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고, 요리사는 이 재료로 그 자리에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다. 매달 한 번씩 진행할 계획이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알면 자연스럽게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생기리라 믿는다.

‘조리 수업’도 시작했다. 조리학과에 다니는 대학생 30명을 뽑아서 진행하는데,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말고 조리자의 마음가짐도 고민하자는 취지에서다.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 문성희 들뫼자연음식연구소 소장, 선재스님 같은 분들이 요리 철학을 가르친다.

참고로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에 있는‘ 한국술집21세기서울’에서 열린 ‘맛 연구회’는 달걀을 주제로 열렸다. 지각현 농부가 소위 ‘공장식 양계’과 차별화 한 자신의 양계법을 설명했고 김봉수 주방장이 4가지 달걀 요리를 선보였다. 참석자들은 단순히 음식 맛을 보는 데 그치질 않고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까지 이해할 수 있는 자리였다.

‘팜 투 테이블’을 실천하는 미국의 셰프이자 요리연구가 댄 바버 [사진제공=글항아리]

-서양에선 농사와 요리를 아우르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 ‘제 3의 식탁’이란 책으로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이란 개념을 널리 소개한 댄 바버도 슬로푸드협회 회원이다. 직접 재배한 채소와 작물로 음식을 차려내는 모델이다. 맛있는 음식은 뭔가 호사스럽거나 사치스럽지 않고, 소박하지만 신선한 재료에서 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혀를 만족시키는 맛집’이라는 단편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좋은 식재료, 농부, 땅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협회에선 전국의 농부를 찾아다니는 투어도 많이 해왔다. 우리의 모임은 ‘맛있음’이란 개념을 넓게 확장하는 데 목적이 있다. 사실 최고의 요리사는 바로 ‘최고의 재료’를 고르는 사람이다.

지난 19일 열린 ‘맛 연구회’에서 선보여진 '닭알찜' 요리. 표고 육수에 달걀을 풀어서 찌고 이것을 달걀 껍데기를 용기로 삼아 담아냈다. [사진제공=슬로푸드한국협회]

-슬로푸드 철학이 얼마나 더 확산될까

▶ 사실 한계가 분명하다. 아무리 퍼져도 우리나라 전체 식재료 유통시장의 1%를 차지하는 것도 어렵다고 본다. 기존 주류 유통 시스템의 힘은 그만큼 강하다.

다만 1%의 힘이라도 키우면 굉장한 잠재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태계의 위기가 지속되고 사라지는 품종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조짐들이 커지면 국가적으로 강력하게 규제하는 단계가 올 수도 있다. 그 상황을 미리 준비하려면 로컬푸드 시스템이 힘을 길러놔야 한다. 거대기업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스템이 한계를 맞이했을 때, 지역별 로컬푸드 체계가 연계되면 대안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운동가 꿈궜던 김 총장=김원일 사무총장의 대학시절 꿈은 ‘농민 운동가’였다. 우연히 참가한 농활에서 가난한 농촌의 모습을 목격하면서다. 이후 자연농업중앙회(현 한국자연농업협회)를 조직하는 데 참여했고 경기도 김포에서 2년간 농사일도 경험했다. 서울로 올라와선 재래시장과 도매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대형마트 유통 현장서도 일했다. 그는 이 시기를 ‘농업의 변두리에 있던 시절’이라고 말한다. 2011년 슬로푸드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사무총장으로 협회에 합류했다. 올해 협회의 화두는 ‘조리하는 대한민국을 찾자’로 잡았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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