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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식은 계절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음식”…정수용 카우리 셰프
  • 2017.04.25.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하루 정도 숙성하면 ‘녹진한 맛이 일품’인 갑오징어, 저도 모르게 딸려 들어와 아낌없이 다 내어주는 어린 도미는 지금이 제철이다. 일식당은 그 계절, 바다에서 건져올린 제철 식재료가 ‘미식의 향연’을 벌이는 곳이다. “일식은 계절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음식이에요.” 

그런 이유로 정수용 헤드셰프(그랜드하얏트 서울 스시바 카우리)는 제철 식재료가 아닌 것을 손님의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다. 사실 그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는 고등어를 식초에 초절임한 시메사바와 다시마 간장으로 숙성한 츠케사바다. 비린 맛과 잡내를 잡기 위해 간장에 적절한 시간 동안 절여낸 고등어 초밥은 카우리가 특히나 자랑하는 메뉴다. 하지만 이 기간 카우리에서 츠케사바를 맛볼 수는 없다. 고등어는 가을이 시작되는 9월부터가 제철이다. “굳이 제철이 아닌 생선을 억지로 껴맞추고 싶진 않아요.” 시그니처 메뉴라도 예외는 없다. 일식에선 ‘식재료’가 가장 중요하고, 일식당에는 ‘사계절이 흐른다’고 믿는 셰프의 소신 때문이다.

지금 일식당은 봄맞이에 한창이다. 봄이 찾아온 카우리에서 정수용(38) 헤드셰프를 만났다. 정 셰프는 JW 메리어트 서울 호텔 일식당 미카도의 홀직원에서 시작해 미국 리츠칼튼 네이플 호텔, 청담동 스시야 스시모토 총괄 셰프를 거쳐 특급호텔 일식당의 헤드셰프가 됐다. 나이에 비해 놀랍도록 빠른 속도다. 정 셰프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수용 그랜트하얏트 서울 스시바 카우리 헤드셰프는 “일식은 계절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며 식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밥과 생선이 만난 견고한 세계= 얼핏 단순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수용 셰프는 “스시는 까다롭고 섬세한 요리”라고 말한다. 셰프의 손 끝과 셰프의 노하우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번의 실수가 식재료와 요리를 망치곤 한다. “그래서 많은 일식 셰프들이 같은 일을 반복해요. 그 끊임없는 반복을 거쳐 실수를 줄이고, 점차 장인이 되는 거죠.”

요리를 통한 셰프의 일은 쌀을 다루는 것부터 시작된다. 초밥에서 쌀(밥)이냐, 생선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뭐가 더 중하냐는 것을 두고서다.

“제 경우엔 쌀(밥)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밥이 80%를 차지하죠.”

시작은 쌀이다. 초밥에는 대체로 고시히까리 품종을 많이 쓴다. “일본 품종이에요. 일식은 어느 식당을 가든 일본의 맛과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본 식재료를 많이 쓰고 있어요.” 쌀도 초(식초)도 그렇다. 지금 현지에서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카우리에 투영됐다.

고시히까리는 대표적인 스시쌀이다. 일반 쌀보다 쌀알이 작고 탄력이 좋다. 초밥이 아니라도 해먹을 수 있지만, 밥을 하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같은 쌀이라도 압력밥솥에 하는 것과 가스에 하는 밥은 달라요. 고시히까리를 일반쌀로 밥을 짓듯이 하면 많이 질어질 거예요.”

스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물의 비율, 쌀을 씻은 정도, 물기를 뺀 정도, 불린 정도가 밥 짓는 노하우에 포함된다. “밥을 짓는 것은 대부분 주방장이나 세컨드 셰프가 하는 일이에요. 밥에서 실수가 나오면 손님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정 셰프 역시 시행착오는 많았다. “쌀을 고르는 것도 당연히 중요해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쌀이 들어와도 완벽하게 비비지 않고, 제대로 씻지 못하면 꽝이에요. 영업 직전에 밥이 잘못돼 버린 적도 있어요.”

시작부터 험난한데, 넘어야할 난관은 더 많다. 제대로 씻어 밥을 하고 나면 이젠 샤리를 만들어야 한다. 샤리는 초밥에 사용되는 밥을 말한다.

과거 초밥집에선 달콤하고 새콤한 맛을 낸 밥 위에 생선을 올렸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금 더 새콤달콤한 맛을 추가하곤 했다. “식초, 설탕, 소금 세 가지가 들어가 밥을 만드는데 비율은 집집마다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지금은 달라졌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설탕을 넣지 않아요. 사실 자연산 생선은 숙성이 되면서 화학 반응을 하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이노신산 성분을 통해 감칠맛이 나요. 굳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되는 거죠. 생선 본연의 맛을 끌어내기 위해 소금을 조금 첨가하는 정도로 달라졌어요.”

밥 다음은 단연 생선이다. 생선 역시 얼마동안의 시간을 가지고 손질하는 지, 어떤 온도에서 올려지는 지, 얼마나 숙성하는 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생선은 항상 같은 상태로 들어오지 않아요. 10가지를 주문했는 데도 세 종류만 쓸만할 때도 있어요.” 그만큼 예민하고, 예측 불가능한 식재료다. 다루는 과정에서도 금세 상처를 입기도 한다. 때문에 일식 셰프는 그 누구보다 섬세함이 요구된다. “밥부터 시작해 초밥을 쥐기까지 일식만큼 섬세함이 필요한 요리는 없어요.”

세심한 셰프의 손 끝에서 태어난 스시는 손님 앞에 놓여지고도 까다롭게 군다. “초밥은 올려놓고 5~10초 안에 먹지 않으면 맛있지 않을 거예요.” 스시 앞에선 한 눈도 팔 수 없다.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찰나’처럼 짧다. 

▶ “최고의 식자재를 쓰는 것이 원칙”= 예민하도록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최고의 요리가 태어나지만, 정 셰프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식자재’라고 했다.

“일식은 식재료가 중요한 음식이에요. 사실 재료 수급이 가장 어려워요.” 카우리에 오기 전까지 정 셰프는 일본의 인기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주인공 같은 시절을 보냈다. 주말만 되면 차를 타고 산지를 돌며 맛있는 생선을 찾아다녔다. 정 셰프의 머릿속에 대한민국 수산물 지도가 펼쳐진다. 통영, 거제, 주문진, 동해는 물론 이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고등어 산지도 정 셰프의 손바닥 안에 있다. 호텔은 별도의 구매 시스템이 가동되지만, 과거의 수고로움은 정 셰프의 자산이 됐다.

“맛있었다고 인사하는 손님들께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재료가 좋아서 그렇다고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자재예요. 언제나 최고의 식자재를 써야한다는 것이 제 원칙이에요. 일식은 생으로 다뤄야 하기에 무조건 재료가 좋아야 하죠. 신선해야 하고, 숙성도 잘 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래서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 일식 요리사에겐 큰 자산이죠.”

최고의 식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제공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매일 저녁 스시 카운터에서 제공되는 오마카세(메뉴를 정해놓지 않고 주방장이 그날 가장 좋은 재료를 이용해 알아서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는 정 셰프와 카우리의 상징이다. 정 셰프는 오마카세에서 단 하나도 겹치는 메뉴를 내놓지 않는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어도 모두가 다른 초밥과 요리를 먹게 된다.

“오마카세가 셰프들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어요. 저도 10개를 만들면 그 중 7~8개는 실패하기도 해요. 하지만 수없이 연구를 하는 거죠. 제가 만든 초밥을 먹고 가만히 씹은 다음 감칠맛까지 느낀 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손님들의 모습을 볼 때, 그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shee@heraldcorp.com
[사진=그랜드하얏트 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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