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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 ‘미슐랭 3스타’ 뛰쳐나온 요리사, 뿌리 찾기에 탐닉하다
  • 2017.06.02.
-‘뿌리 프로젝트’ 3년째 이어가는 정서영 요리사 만나보니
-200여가지 식재료 영문 소개…외국 입양자들 뜨거운 반응
-뉴욕서 한국 식재료가 일본산으로 둔갑하는 것 보고 프로젝트 구상
-자비 털어서 완도ㆍ울릉도 등 전국 방방곡곡 산지 찾아

[리얼푸드=박준규 기자] 셰프 인터뷰는 주로 식당에서 이뤄진다. 단정하게 조리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때론 요리사가 손수 만든 요리를 맛보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서영(40) 요리사와의 만남은 살짝 다른 그림이었다. 지난달 24일 서울 삼각지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편안한 외출복 차림에 노트북을 열고 뭔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다. 언뜻 자소서 마감이 닥친 취준생처럼 보였다.

“프로젝트 막바지 작업 때문에 정신이 없네요.” 그는 ‘뿌리키친’이라고 이름붙인 프로젝트를 3년째 이어가고 있다. 한국인들이 수시로 먹는 각종 식재료를 영어로 정리해서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이다. 그렇다고 식재료의 개괄적인 정의를 전달하는 수준이 아니다. 정 요리사는 각 식재료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부터 맛, 조리법 등을 구구절절 알려준다. 
지난달 24일 삼각지의 한 카페서 만난 정서영 요리사가, 노트북으로 뿌리키친 프로젝트 웹페이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두릅을 예로 들어보자. 두릅은 어떤 식물이고 어떻게 재배하며 한국에서 두릅의 역사는 어떠한지를 일단 얘기한다. 또 영양분은 뭐가 들었는지, 좋은 두릅을 고르는 방법, 손질법, 두릅을 활용한 요리 등까지 덧붙인다. 이론과 실제를 아우른다.

867개 영단어로 구성된 두릅 텍스트 중간중간엔 사진 10장과 짧은 동영상도 첨부됐다. 다 살펴보고 나면 외국인이라도 두릅을 꽤 이해할 수 있다. 단지 실제로 먹어보지 못했을 뿐이다.

지난 3년간 이런 식으로 정리한 식재료만 200가지에 달한다. 이 가운데 수십가지는 직접 산지(産地)까지 찾아가서 취재한 결과물이다. 뿌리키친 프로젝트 웹페이지(www.bburikitchen.com)엔 이 결실이 오롯이 쌓여있다. 정 요리사는 “진정성과 열정만으로 하는 개인적인 프로젝트에요”라고 말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어디서 후원을 받지도 않는다.
인터뷰하고 있는 정서영 요리사.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뉴욕에서의 4년, 한국에서의 5년 = “시키지도 않은 걸 왜…그것도 자기돈 들여서”라는 의문이 든다면 정서영이란 사람의 이력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는 한때 뉴욕 레스토랑의 중심에 있었다. 미쉐린 가이드에서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인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도 거쳤다. 조리를 공부하는 ‘영셰프’들이라면 한번쯤 그려본 근사한 그림. 정 요리사는 “체력적으론 가장 힘들었지만, 인생에선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했다.
 
그는 비교적 늦깎이에 요리사가 됐다. 대학졸업 후 한국에서 패션MD로 일하다 29살에 세계 3대 요리학교인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입학했다. 패션회사를 향한 막연한 동경에 들어갔지만 실제 업무의 풍경은 기대와 달랐다. 정 요리사는 “패션쇼만 맘껏 볼거라고 생각했는데 순전히 숫자, 분석 싸움이이었어요. 고민을 했어요. 10년 뒤에도 좋아하면서 또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죠”라고 그때 심정을 이야기했다.   
 
처음엔 “요리 배우려면 문화센터를 가지 왜 29살에 유학을 가느냐”며 반대하던 부모님도 딸의 굳은 결심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부모님의 응원과 후원을 받으며 CIA에서 2년 과정을 마쳤다. 이후에 뉴욕의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 자리를 얻었다. 세계 톱 클래스를 경험했지만, 동시에 불편한 구석도 알게 됐다.

“뉴욕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들의 수준이 어느정도냐면 스코틀랜드 메추리가 좋다면 아침에 비행기로 메추리를 공수해요. 일본 딸기가 괜찮으면 일본에서 비행기로 딸기를 실어오죠. 한국 식재료도 꽤 많이 들어오는데 대개 일본 이름으로 들어오더라고요. 한국 김은 ‘노리(のり)’라는 일본 이름으로 쓰여요. 되게 안타까웠어요. 제대로 우리 것을 알려야겠다는 고민이 생겼죠.”
200여가지 식재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뿌리키친’ 웹페이지 화면.

이런 고민 중에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이 한국에서 날아왔다. 아예 뉴욕 생활을 정리해서 돌아왔다. “한국음식을 해야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서다. 마침 샘표식품에서 기업 셰프를 찾고 있었다. 당시 샘표는 우리의 전통장을 콘셉트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녀에겐 한국 요리사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였다.

5년간 샘표에서 열심히 일했다. “한식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장을 알릴 기회도 꽤 많았다”고 정 요리사는 회상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제품을 소개하는 게 기업 셰프의 일이더라고요. 그걸 탓할 순 없지만, 제가 생각하던 지점과는 달랐죠. 다시 고민에 사로잡히면서 머리 식히고 공부할 겸 무작정 산지를 찾아갔어요. 처음 갔던 곳이 전남 장흥에 있는 매생이 양식장이었어요. 그게 뿌리 프로젝트의 시작이 된 거예요.”

▶완도에서 울릉도까지 = 처음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뿌리 프로젝트의 토대를 다졌다. 하지만 어느새 부업이 본업을 흔드는 수준이 됐다. 회사를 나왔다. 그렇다고 가게를 차리고 ‘오너 셰프’가 된 것도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기회 될 때마다 활동하는, 굳이 표현하자면 ‘프리랜서 요리사’가 된 것이다. 교통방송, 아리랑TV 방송에 고정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따금 외국인들에게 요리수업도 연다.

혼자서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긴 벅찼다. 산지 취재에 동행하고 영문으로 정리를 도와줄 파트너가 필요했다. 그의 요리수업을 찾았던 소냐 스완슨(30) 씨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인 어머니,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난 스완슨 씨는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중이었다. 

지난달 26일 정서영 요리사와 함께 기자를 만난 스완슨 씨는 “제가 잠깐 태국에 여행 중이었는데 언니가 '뿌리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겠냐'고 제안했어요. 흔쾌히 ‘오케이’라고 했죠.”

두 사람의 의기투합 뒤로 프로젝트는 탄력을 받았다. 정 요리사는 “공무원들 도움을 받기도 하고 민간 웹사이트를 뒤져서 판매자부터 생산자까지 전화를 돌립니다. ‘저희는 이런 사람들인데 뭐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라고 하면서요.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전화를 하는거죠”라고 설명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말도 안 되는’ 방식이었다. 지난달 중순에는 이 방식으로 울릉도 취재도 다녀왔다.

돈도 돈대로 쓰고 몸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새로 배우는 게 있다고 정 요리사는 강조했다.

“명색이 요리사인데 제가 너무 무지하다는 걸 깨달았죠. 산지의 삶에 대해선 전혀 몰랐으니까요. 해산물을 잡으려면 물때를 알아야하고 전년의 기상 상황이 올해의 농사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 등을 절절하게 알게 됐어요. 생산자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고, 이제 시장에서 ‘너무 비싸다’란 소리가 안 나와요.”

지난달 26일 서울용산헤럴드스퀘어에서 정서영 요리사를 다시 만났다. 그의 옆엔 소냐 스완슨 씨도 함께였다. 스완슨 씨는 프로젝트 기획과 자료 수집을 함께 진행한다. [사진=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입양자들이 뿌리 프로젝트 열성팬" = 정서영-스완슨 듀오는 올 하반기엔 지금까지의 작업을 갈무리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여태껏 모든 콘텐트를 영어로 만들었기에, 미국에서 책을 내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책을 낼 수 있다면 내년 평창 올림픽 전까지 내면 좋겠어요”라고 두 사람은 말한다.

그들은 웹사이트, SNS를 통해 외국인들의 다양한 피드백을 받고 있다. 웹사이트를 찾아오는 이들은 미국, 캐나다, 동남아, 유럽을 가리지 않는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가봉 같은 나라에서의 접속기록도 있단다. 

나란히 앉은 정서영 요리사와 소냐 스완슨 씨. [사진=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한국에 조금이라도 배경이 있다면 우리 프로젝트에 엄청 관심이 많아요. 특히 어린 시절에 입양된 분들이요. 작년엔 덴마크 한국입양인협회가 매년 개최하는 김치 페스티벌에 저희를 초대했어요. 거기서 한국의 맛에 관한 워크숍을 열고 전통 방식으로 만든 간장, 된장을 소개했어요.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정서영 요리사는 매주 한 번씩 경기도 안양에 있는 대림대 조리학과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는 수업에서 실제 주방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틀어준 적이 있다고 했다. 정신없이 조금은 거칠게 돌아가는 장면이 담겼다.

“애들이 술렁거렸죠. ‘아 직업 바꿔야겠다’하는 소리도 하고요. 그 모습이 진짜인데도 아이들은 화려하게 요리하는 ‘셰프’를 기대했던 거죠. 저도 소냐하고 종종 ‘이거 우리 왜 해’하면서 회의감 느끼기도 해요. 그래도 결국은 다시 돌아옵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치’를 따지는 삶을 살면 좋겠어요. 당장 돈은 안 되더라도요.”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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