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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릴수록 깊어진다…멸치와 메주만으로 빚어낸 ‘어간장’
  • 2017.06.13.
[리얼푸드=박준규 기자] 간장은 우리 식생활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 전통 간장은 기본적으로 메주를 오래 발효·숙성시킨 뒤 소금물을 부어 만들었다. 메주를 만드는 콩이 지역마다 다르고, 숙성하는 기간도 제각각이라 맛과 향이 다른 수많은 간장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다양성은 이제 색이 바랐다. 전통적인 방식대로 만들어진 게 드물다. 오랜 숙성기간을 건너 뛰어 만들어진 간장들을 식탁 위에서 찾기 어렵다.

흔히 “한식의 핵심은 식재료와 장이다”라고 한다. 하나의 식재료로도 어떤 장을 고르느냐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 ‘어간장’도 옛사람들이 먹었던 수많은 장 가운데 하나지만 지금 사람들에겐 낯설다.
샘플로 전시된 어간장. 색은 투명한 갈색을 띈다. 짠맛은 간장보다 덜하지만 감칠맛은 더 강렬하다.

지난 8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맛동에서 어간장을 배울 수 있는 쿠킹 세미나가 열렸다. 어간장과 액젓 전문가인 배정숙 봄초여농업회사법인㈜ 대표가 시민들에게 어간장을 소개하고 맛도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날 어간장을 소개한 배정숙 봄초여농업회사법인(주) 대표.

▶기다려야 비소로 얻는다 = 어간장은 단순하다. 재료부터 제조 방식까지 다 그렇다. 필요한 재료는 멸치, 메주, 천일염이 전부다. 발효된 메주를 잘 씻어서 물에 불린 뒤에 멸치, 천일염을 넣고 섞으면 된다. 다만 이것들로부터 어간장을 얻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데 뒤섞은 메주와 멸치를 식수용 탱크에 두고 1차 숙성(36개월)을 거쳐야 한다.

3년만 기다리면 끝이 아니다. 곧이어 2차 숙성을 거친다. 위로 떠오른 기름기를 걷어내고 바닥에 가라앉은 잔여물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6개월을 더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병에 담겨 포장된다.
배정숙 대표가 손수 만들어 제공한 점심식사. 어간장으로 사용해 만든 건강식이다.

어간장은 그냥 간장과 다르게 맑은 갈색을 띈다. 감칠맛은 일반 간장보다 훨씬 좋다. 이 어간장은 2014년 ‘맛의 방주’(Ark of Taste)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맛의 방주는 비영리 국제기구인 슬로푸드협회가 전통 식재료와 음식, 문화를 보전하는 프로젝트다. 어간장이 이름을 올린 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배 대표는 어간장 재료를 고를 때 봄과 초여름 사이에 서해안에서 잡히는 멸치를 고집한다. 이 시기 그물에 걸리는 멸치가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가을에 잡히는 멸치는 육질이 단단해서 깊은 맛이 덜하다고 한다.

배 대표는 “어간장은 삼국시대부터 만들어 먹었다는데 당시엔 결혼하면 혼수로 지참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며 “시간이 흘러 제조방식이 조금씩 바뀌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도 어간장 건강밥상을 맛봤다. 특히 어간장 고추장이 인기였다.

▶어간장 ‘어떤 음식에든 제몫 톡톡’ = 이날 쿠킹 세미나에선 어간장을 베이스로 만든 한끼 식사를 먹어볼 수 있었다. 나물밥, 뽕잎나물, 머위나물, 뽕잎장아찌, 어간장 고추장, 미역국, 두부부침 등 풍성한 메뉴였다. 밥부터 반찬, 국 모두 어느하나 자극적이지 않은 순한맛을 냈다. 그러면서도 자꾸 숟가락과 젓가락을 끌어당겼다.

특히 어간장 고추장의 맛은 인상적이었다. 어간장에 쌀누룩을 섞어서 만든 것인데, 알싸한 매움과 달콤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독특한 맛이었다. 딸기잼을 먹는 것 마냥 고추장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배정숙 대표는 “쌀조청과 딸기발효액을 섞어서 천연의 달콤함을 냈는데, 이게 어간장의 감칠맛과 어우러지면서 매력적인 맛을 준다”며 “어간장 고추장은 쌀 소비를 촉진해보자는 취지에서 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어간장은 어떤 음식에 넣든지 톡톡히 제 몫을 다한다. 배 대표는 “어딘지 맛이 부족할 때 어간장을 넣으면 맛이 확 산다”며 예찬론을 펼쳤다. 10년 째 어간장에 몰두하고 있다는 그는 더 많은 소비자들이 ‘전통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한편, 서울시와 슬로푸드한국협회는 식재료와 음식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시민들과 나누는 ‘가나다 밥상’ 프로젝트를 매달 진행하고 있다. 토종 식재료와 음식은 물론 외국 요리까지 다룬다. 자세한 프로그램은 서울시 식생활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www.seoul-foodies.com)이나 맛동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SEOULFOODPLATFORM)에서 확인할 수 있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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