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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리연구가 홍신애 “자연을 거스를 수 있는 건 없다, 그게 바로 슈퍼푸드”
  • 2017.08.01.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해남에서 공수한 황토고구마에 동해산 돌문어, 7월에 접어들어야 수확을 시작하는 국내산 청포도. 샐러드 한 접시에 ‘팔도강산’이 담긴다. 이 곳에서라면 계절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정갈한 식재료에 ‘셰프의 묘’를 더한다. 한 입 베어물면 그야말로 ‘신세계’. 돌문어의 믿기지 않는 부드러움에 눈이 휘둥그레질 만하다.

“보통 문어는 오래 삶으면 질길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이건 1시간 30분을 삶은 거예요. 오히려 더 부드러워요.” 

홍신애 요리연구가는 “자연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식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방울토마토는 일일이 껍질을 벗겨냈다. “껍질에 약간의 비린맛이 있어요. 껍질을 벗겨야 식감도 좋아지고요.” ‘셰프의 마음’이자 ‘엄마의 마음’이다.

밤낮없이 분주한 서울 강남 신사역 뒷골목.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모른 척 지나칠 법한 골목 어귀에 아담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솔트’가 있다. 테이블은 고작 4개뿐. “꽉꽉 채우면 스무 명 정도는 앉을 수 있어요.” 이 곳의 ‘오너 셰프’는 케이블 채널 tvN ‘수요미식회’를 통해 맛깔 나는 입담으로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요리연구가 홍신애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와 꼭 닮은 그림이 손님들을 맞는다.

17.8평, ‘공간의 협소함’에 비해 ‘부엌’의 욕심이 과하다.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요리의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이른바 ‘오픈키친’. 어지간한 ‘청결도’로는 티도 안 나는 ‘완전 개방형’이다.

“아, 이럴 땐 원래 그럴 듯 하게 말해야 하는데…하하하” 청량한 웃음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메운다. “여기 너무 좁잖아요. 최소한의 인원으로 서빙까지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거예요.” 애써 꾸며 말하는 법이 없다. 장마가 찾아오기 전 홍신애(41) 요리연구가를 만났다. 

▶ 팔도강산 담아낸 음식…“가격 타협 보지 않을 뿐”=발에 차이는게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라지만, ‘솔트’엔 다른 곳엔 ‘없는’ 것들이 많다.

이를 테면 ‘전세계 유일’의 5분도미 리조또. 이 리조또는 국내엔 하나 밖에 없는 일명 ‘홍신애쌀’로 만든다. ‘홍신애쌀’은 알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한국인들은 찰토마토까지 만들어 먹는 민족이잖아요. 한 때 고시히까리 쌀이 유행한 것도 씹는 맛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 쌀의 경우 알이 작으면서도 찰기가 있고, 씹는 맛이 좋아요. 한국 사람들에게 잘 맞는 쌀이라고 판단했죠,”

쌀은 백미처럼 완전히 다 벗겨낸 것이 아니라 50%만 깎아 만든 ‘5분도미’다. 한식집인 ‘쌀가게’를 운영할 당시 직접 도정까지 해서 밥을 짓던 노하우가 더해졌다. 상업용으로 밥을 짓기 위해 도정을 한 건 ‘쌀가게’가 세계 최초였다. “5분도미는 보기엔 백미인데, 영양소는 현미에 가까워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리조또’에 어울리지 않는 쌀이라고 할 지도 모를 일. 그들은 쌀알이 크고 퍽퍽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리어 “이탈리아 단골들이 많다”고 한다.

쌀은 물론 메뉴를 채워넣는 식재료마다 평범한 것이 없다. 기본은 제철 식재료의 사용이다. 계절마다 메뉴가 바뀐다. 1년에 총 4번. 그 중 70%는 고정이고, 30%는 ‘자연이 허락하는’ 제철 메뉴들로 구성한다.
케이블 채널 tvN ‘수요미식회’를 통해 얼굴을 알린 홍신애 요리연구가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솔트의 인기메뉴인 ‘문어 샐러드’. 팔도강산에서 공수한 식재료로 한 접시를 담아낸다.

“문어 샐러드는 늘 있지만, 손님들은 매번 다른 걸 먹죠. 계절마다 올라가는 재료가 달라지니까요.” 같은 재료라도 기왕이면 더 좋은 맛을 내는 재료를 찾는다. “다 같은 새우라도 알새우, 탈각새우, 가재새우의 맛이 달라요. 한 번 가재새우를 맛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요. 저희는 제주도에서 가재새우를 받아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에요. 가재새우는 제주에서만 잡히니까요. 냉동해서 포장한 걸 살 수도 있죠. 하지만 거기까지 갔다 오는 동안 새우는 망가지거든요. 그걸 요리사들이 모르지 않아요.”
탱탱한 명란이 입 안에서 터지는 맛이 일품인 명란파스타

테이블이 4개 밖에 되지 않는 레스토랑에서 과하다 싶을 만큼 식재료에 열을 올린다. 발주처만 해도 무려 30여개. 쌀가게 운영 시절엔 “도라지나 참기름을 국내산으로 쓰는 가게는 여기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최상급 식재료만 찾아 쓰는 덕에 ‘남는 장사’는 꿈도 못 꾼다. 몇 번은 기어이 문을 닫았다. “한식과 달리 양식집은 그래도 다 남아요.” 그렇다지만, 사실 일반적인 가게 운영은 아니다.

“왜 이렇게 고집하냐고요? 많은 레스토랑이 요리 대비 가격을 타협하는 거예요. 어떤 메뉴를 1만2000원에 팔기 위해선 싼 식재료를 가져와 쓸 수 밖에 없어요. 우린 가격 타협을 보지 않고 제일 맛있고 좋은 걸로 하는 거죠. 저희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식재료의 소중함을 아는 분들이에요.” 그들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영국에도 없다”는 메뉴 명에 외국인들이 ‘피식’ 웃는다는 달고기로 만는 ‘피쉬 앤 칩스’


▶ 가장 건강한 음식은…“자연을 거스를 수 있는 건 없어요”=홍신애의 식탁은 ‘요리사의 책무’이자 ‘엄마의 마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서 나온다.

목사였던 할아버지로 인해 집안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그 시절 홍신애 요리연구가의 집엔 커다란 방 하나에 식재료를 가득 채워두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체득한 식재료의 소중함은 지금으로 이어졌다.

아들의 건강도 ‘좋은 식재료’를 찾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음식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 하다 보니 다양한 재료를 찾아 조리법을 달리 하게 됐어요. 토마토 껍질을 벗겨 내니 소화가 잘 되고, 백미를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는데 쌀을 껍질째 먹였더니 소화를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5분도미를 쓰게 된 거예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5분도미 리조또

타고난 ‘방랑벽’으로 인해 10년간 식재료를 찾아다녔고, “여행지에서도 성벽보다는 시장 방문을 더 선호”한 덕에 홍신애 요리연구가의 자산은 더 탄탄해졌다. 요즘의 흐름을 돌아보니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식재료를 대하는 마음에선 안타까움도 비친다.

“저희는 식당을 하면서 재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알잖아요. 자꾸 제철의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세대가 이렇게 유일하게 먹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에요. 그걸 보여줄 사람은 요리하는 우리 밖에는 없잖아요.”

과거엔 “흔했던” 생선인 달고기는 급기야 “안 잡힌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고 한다. 가재새우는 이미 귀한 바다 자원이 됐다. 고등어는 사라지고 새로운 어종이 동해를 채운다. 기후변화는 우리 먹거리의 생태계를 뒤바꾸고 있다. 안동에서 사과를 가져다 쓰던 것은 옛 일, 마음에 쏙 드는 달걀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이제 땅이 변하고 있어요. 제철의 개념이 사라진 것은 농사기법만의 발달은 아닐 수 있어요. 땅 위에서 자라는 것보다 바다는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고요. 지금 우리 세대는 가지고 있는 돈으로 뭐든지 해결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거예요. 더이상 돈으로 산성화된 땅을 알칼리화 시키지 못해요. 그걸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땅을 아는 사람들인 거죠. 이제 농부가 부자인 시대, 식재료를 아는 사람이 건강한 시대가 올 거예요.”

아무리 슈퍼푸드와 진기한 식품이 넘쳐나는 시대라도 가장 건강한 음식은 ‘자연’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그의 생각이다. ‘건강’이 푸드 트렌드가 된 요즘엔 ‘자연의 법칙’이 더 강조된다.

“눈에 좋은 루테인 많이 먹는다고 좋은 걸까요? 루테인만 백만 개 먹으면 도리어 몸 상해요. (웃음) 균형감각이 가장 중요한 거잖아요. 지금 오이가 먹고 싶다면 오이 안에 있는 미네랄과 수분이 필요한 거예요. 제철에 잘 길러진 식품을 먹는 것이 중요해요. 자연을 거스를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게 자연의 힘이라고 믿어요. 그게 슈퍼푸드지, 다른 건 없어요.”

shee@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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