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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충제 달걀 파문…친환경 인증, 우리가 알던 친환경이 아니었다?
  • 2017.08.22.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1인당 연간 달걀 소비량은 268개(농림축산식품부 기준). 국민 한 사람당 일주일에 4.46개를 소비하는 명실상부 ‘국민반찬’이 혹독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AI에 이어 ‘살충제 달걀’ 파동으로 ‘먹거리 공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살충제 성분이 나온 농가 52곳 중 절반 이상인 31곳이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라는 점에서 소비자 불신은 걷잡을 길이 없다.

홍보대행사에 근무 중인 워킹맘 김미나 씨는 “아이가 먹을 음식은 무조건 유기농, 친환경 식품을 찾는데 이번 달걀 파동에선 친환경 인증 농가가 무더기로 적발되다 보니 다른 식품까지 신뢰하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이번 ‘살충제 달걀’ 파문은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수사가 따라올 만큼 소비자들의 배신감이 깊다.

서울 강남 신세계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만난 40대 주부 김수진 씨는 “비싼 가격을 주더라도 친환경 식품을 구입했던 이유는 각종 유해성분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신뢰 때문이었는데 이번 살충제 달걀 사태로 배신감이 든다”며 “특히 달걀의 경우 돈을 더 내더라도 당연히 유정란이나 친환경 제품만 찾았는데 이젠 뭘 먹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이번 살충제 달걀 파동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유기농, 친환경 인증 농가들이 정말 유기농을 하고 있는지 큰 의심을 가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 “하루 아침에 생긴 사태 아니지만…” 안타까운 농가=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농가들의 마음도 안타깝다. 경상북도 상주 사벌면에 위치한 천마산 농장의 박태호 농부는 “본의 아니게 다른 농가도 손해를 보고 소비자들이 오해할 부분들이 자꾸만 생기게 되는 사태로 접어들고 있다”며 현재의 상황을 차분히 돌아봤다.

천마산 농장은 전수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산란계 농가로, 한살림 생활협동조합에 달걀을 납품하고 있다. 이번 살충제 파문이나 DDT 검출 농가와는 관계가 없으며, 개방평 평사에서 키운 닭들은 친환경유기식품법이 정한 기준보다 더 넓은 공간(0.25m²)에서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비유전자조작(Non-GMO) 옥수수로 만들고 성장촉진제, 산란촉진제, 성장호르몬제 등을 넣지 않은 ‘안심대안사료’를 쓰고 있다. ‘동물복지’에 있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농장이다.

박태호 씨는 “우리의 경우 살충제를 사용할 정도의 충들이 생기지 않아 살충제 사용에 대해 아예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전제하며 “이번 사태는 전적으로 농가의 책임이라 하기도 힘들지만, 농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태”라고 짚었다.

농가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밀집형 사육’으로 보고 있다. 비위생적인 좁은 공간은 진드기 발생이 쉽고, 전염성이 높다.

박 씨는 “밀집형 사육을 개선하지 않으면 같은 상황이 반복되겠지만 단번에 개선할 수는 없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언급했다. 자연 계사는 “사람이 아닌 동물 위주의 계사이다 보니 비용과 관리에서 힘든 점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케이지로 닭을 키울 경우 생산성도 월등하다. 천마산농장의 경우 현재 540평에서 5000수를 키우고 있지만 박 씨는 “만약 케이지로 키운다면 3만 수까지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농가의 입장에선 생산성과 비용을 고려하다 보니 쉽지 않은 선택이고, 정부의 지원 없이는 개선이 힘든 부분이다.

박 씨는 때문에 “살충제를 대체할 수 있는 물품을 만들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며 “케이지에 넣어 키운다 해도 농가의 입장에선 자식같은 닭이다. 그 닭이 아프면 그런(살충제 사용) 유혹이 들 것이고, 산란율이 줄어드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기도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농가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다만 박씨는 “이번 사태는 하루 아침에 된 건 아니다. 하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본다”며 “농가의 도덕성 회복, 인증제도의 신뢰 회복을 위한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훈 교수 역시 “꿋꿋하게 친환경을 고집하고 지킨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범죄행위다”라며 “불합리한 유통구조, 밀집사육도 해결해야 하지만 친환경 인증을 받고도 지키지 못한 농가는 강력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540평 평사에서 산란계 5000수를 키우는 천마산 농장

▶ 다시 보는 축산 인증 제도…내가 알던 친환경 맞나?=살충제 달걀 파문으로 농가의 모럴 해저드가 드러났고, 정부의 구멍 뚫린 친환경 인증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 팀장은 “친환경축산물인증 제도가 다양하다 보니 잘못된 정보가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있다”며 “소비자가 인식하는 친환경과 실제 인증엔 차이가 있다. 무항생제 인증을 받았다고 밀집사육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짚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친환경 축산물 인증은 다양하다. 산란계 농가 1456곳 중 780곳이 친환경 인증을 받았고, 이 가운데 무항생제 축산물이 765곳(52%)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의 축산농가 인증제도는 크게 ‘친환경축산농가’와 ‘동물복지축산농가’로 나눌 수 있다. 

친환경축산농가는 ‘무항생제축산농가’와 ‘유기축산농가’로 나뉜다. 이는 먹이는 사료가 구분 기준이 된다. 무항생제 사료냐 유기 사료냐의 문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무항생제축산농가에는 사육 방식은 기준이 되지 않는다. 95% 이상의 산란계 농가가 사용하고 있는 배터리 케이지(0.05㎡)를 써도 먹이는 사료에 따라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케이지를 사용할 경우 유기축산(1마리당 0.22㎡) 인증을 받을 수 없다. 유기 축산은 사육조건에 유기농 사료를 닭에게 먹이는 것과 사육장에 방목지를 포함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소비자가 인식하는 ‘친환경’에 가장 가까운 것은 ‘동물복지’ 축산 농가다. 국내 동물복지축산농가는 89곳으로, 전체 산란계 농가(1456곳)의 6%에 불과하다. 동물복지 농가는 바닥 25~40㎝ 높이에 횃대를 설치하고, 카니발리즘을 막기 위해 행해지는 부리 다듬기는 금지하고 있다. 실외방목장은 1마리당 1.1㎡ 이상의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인해 인증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채일택 팀장은 ”애매한 기준이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왔는데, 향후엔 방목인지케이지인지 사육방식과 형태도 인증 제도와 함께 판매되는 달걀에 표기해 소비자가 제대로 알고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마산농장 박태호 농부는 “국내의 경우 친환경 인증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수많은 인증제도가 쏟아졌다. 소비자 역시 인증 마크를 원해 이를 이용한 농장도 나오게 됐다”며 “하지만 정직하게 지키는 농가도 많다. 떳떳하게 지키는 농가를 신뢰하고, 여러 지원이 마련되면 이번 사태가 개선될 수 있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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