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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기ㆍ우유ㆍ계란 없어도 신났다…비건들의 한강 파티
  • 2017.08.22.
[리얼푸드=박준규 기자] 누군가 육식을 하지 않는 배경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또는 건강을 되찾으려고 채식을 선언한다. 환경운동과 맞물리기도 한다. 가축을 도살하고 무분별하게 육류를 소비하는 데 문제의식을 품은 사람들도 채식 대열에 동참한다. 결국 채식은 삶을 마주하는 가치관 또는 라이프 스타일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20일 저녁, 채식을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로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이날 서울 강남구 잠원한강공원 에이보드(A-board)에선 ‘비건 크루즈 나이트 파티(Vegan Cruise Night Party)’가 열렸다.

파티는 채식주의자 8명으로 구성된 ‘노티 비건즈(Naughty Vegans)’라는 팀이 기획했다. 고려대 채식동아리인 ‘뿌리:침’과 비건ㆍ동물권을 주장하는 모임인 ‘오로지순하리’ 멤버들이 주축이다. 
소젖을 쓰지 않은 ‘비건 치즈’. 이 치즈를 올린 피자도 맛볼 수 있었다.

▶‘3無 파티’ = 이날 행사장엔 기존 파티에서 으레 등장하는 3가지가 없었다. 고기, 유제품, 계란이다. 행사장 곳곳에선 채식주의자 음식을 파는 부스가 마련됐다. 빠짐없이 순수한 식물성 재료만으로 음식을 차려냈다.

행사 초반엔 비건버거가 인기였다. 여기에선 버섯버거, 현미버거, 고구마버거 등이 차려졌다. 고기패티는 쏙 빠졌다. 대신 식물성 재료로 만든 패티가 빈 자리를 차지했다. 현미, 콩, 버섯, 들깨, 양파, 부추 등을 갈아서 반죽한 뒤 동그랗게 모양으로 튀겨낸 것이다.

고기패티를 뺀 ‘비건 버거’. 현미, 버섯, 양파 등으로 만든 식물성 패티가 들어있다.

고기 한 조각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전혀 어색한 맛은 아니었다. 이 부스를 차린 하이미소 구건모 본부장은 “갈아낸 재료를 한데 섞어 반죽을 만들고 숙성을 거친다. 그러면서 반죽이 짙은 갈색으로 바뀌고 깊은 풍미도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버거에 쓰인 빵은 발아현미를 갈아서 구워낸 것이라고 소개했다. 

고기패티를 뺀 ‘비건 버거’. 현미, 버섯, 양파 등으로 만든 식물성 패티가 들어있다.

소젖으로 만들지 않은 치즈도 눈길을 끌었다. 식물성 기름에 코코넛, 타피오카 전분 등을 섞고 여기에 식물성 유산균을 넣어서 발효시킨 것이다. 생김새나 맛을 살펴도 일반 치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장에선 이 식물성 치즈를 위에 올린 치즈피자도 맛볼 수 있었다. 오븐이 준비되지 않아 프라이팬으로 피자를 구워냈는데, 주문이 몰리면서 피자를 받아보기까지 20분은 기다려야 했다.

오후 7시, 해가 떨어지면서 ‘비건 바비큐’ 인기가 치솟았다. 숯불 위에 채식 고기(Vegetable meat)을 익혀서 갖은 아채와 함께 내주는 메뉴였다. 행사장에선 맥주를 비롯한 주류도 판매됐다. 채식 바비큐에 맥주를 마시면서 몸을 흔드는 사람들도 보였다. 저녁이 되면서 완연한 파티 분위기가 번졌다. 
 
파티에서 단연 인기는 비건 바비큐였다. 콩으로 만든 채식 고기를 바비큐처럼 구워낸 것.

▶“죄책감 없는 파티” = 이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그치길 반복했다. 짧은 시간에 강한 비가 쏟아지기도 했다. 행사를 준비한 노티 비건즈 멤버들은 ‘개점휴업’을 가장 염려했다고 했다. 비 때문에 전력공급이 어려워진 탓에 파티 초반엔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부스도 있었다.

노티 비건즈 멤버 김수현 씨는 “비 때문에 예정된 이벤트도 하지 못하고 크고 작은 미흡한 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 500여명이 파티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로서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연출한 황윤 감독, ‘비건 트레이너’로 알려진 박윤하 씨 등도 다녀갔다. 채식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꽤나 유명한 이들이다.

자신을 제이(J)로 적어달라고 부탁한 한 참가자는 “채식주의자들은 사회적으로 보면 소수인 건 확실하다. 그래서 같은 삶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이벤트는 소중하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부분채식주의자’라고 한 정하림 씨(28) 씨는 “육류 일색의 파티 음식은 먹으면서도 작은 죄책감을 느끼곤 하는데, 여기선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 큰 매력”이라며 “운영상 미숙한 부분도 보이긴 하는데 어쨌든 다채로운 채식 음식을 소개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파티엔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기꺼이 환영받았다. 애초 이날 행사는 ‘채식은 어렵지 않고,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알리는 목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살충제 달걀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비윤리적 축산’을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채식이 주목받고 있다.

채식주의자 친구의 손에 이끌려 파티에 온 대학생 정민지(23) 씨는 “행사 콘셉트가 단순히 ‘채식주의자들끼리 모여서 놀자’가 아니라 채식을 더 알리고 함께 하자는 쪽이어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주부 박화선(41) 씨는 “여기서 파는 메뉴들은 기존 육류나 유제품을 ‘대체’하는 비건 메뉴들이 주를 이루는데 채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겐 ‘이렇게 먹어도 맛있구나’하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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