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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의 수도, 페루의 맛③]종류만 4000여개, 여기가 바로 감자의 고향
  • 2017.09.15.
[리얼푸드=피삭(페루)고승희 기자] 해발 4000m, 하늘이 더 가까워지고 걸음은 더 무거워진다. 머리 위 태양은 겨울로 접어든 7월 중순에도 강렬한 빛 줄기를 내리 꽂는다. 햇볕에 그을린 다부진 손이 별별 종류의 감자를 들어올렸다. 대지의 색을 닮은 갈색은 물론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 흰색까지 모두 다 감자다. 스윽 썰어 반을 갈라 보니 연노란 속살 사이로 알록달록한 ‘자연의 색’을 고스란히 품었다. 모양도 제각각이다. 한국에서 흔히 보던 매끈하고 동그란 감자는 이 곳에선 평범하기 그지 없다. 
쿠스코 북동쪽 우루밤바 강을 따라 위치한 감자공원에 거주하고 있는 농부 농부 아니세또 꼬요 꼬요(Aniceto Ccoyo Ccoyo, 30)는 “페루인에게 감자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했다.

해발 3100m에서 4800m까지 오가는 거대한 토양에서 재배되는 이 감자들은 전 세계 감자의 조상 격이다. 페루 안데스는 ‘감자의 고향’이다. 역사학자들과 페루 리마에 위치한 국제감자센터에 따르면 감자는 페루에서 약 8000년 전부터 재배됐다. 잉카제국의 후예인 젊은 농부 아니세또 꼬요 꼬요(Aniceto Ccoyo Ccoyoㆍ30)는 “감자는 성스러운 산과 어머니 지구(la madre tierra)가 품어낸 작물”이라고 힘줘 말했다. 
페루의 다양한 감자들

▶잉카의 후예들이 보존한 4000종의 감자=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비행기로 1시간을 날아가면 잉카 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에 도착한다. 쿠스코에서 다시 북동쪽으로 1시간 30분, 우루밤바 강을 따라 가파른 절벽을 아래에 두고 달리면 광활한 감자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3100m부터 시작되는 감자공원(Parque de la Papa)에는 잉카제국을 세운 케추아(Quechua)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 곳은 지난 2010년 토종 작물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역 주민과 비영리단체 안데스가 관리하는 보호구역으로 설정됐다.

아니세또 꼬요 꼬요는 “감자공원 9200헥타르에는 6개 공동체, 65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루밤바를 따라 이어지는 산맥의 주민들은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현지 주민에 따르면 저지대에선 옥수수(Maiz), 퀴노아(Quinua, 곡류), 아바스(Habas, 콩류)를, 중지대에선 오까(Oca, 안데스 팽이밥), 마스구아(Masgua, 뿌리식물)를 재배한다.

한 걸음을 앞으로 떼기도 쉽지 않은 고산지대는 ‘감자의 천국’이다. 농민들은 해마다 조금씩 고도를 바꿔가며 감자를 재배하고 있다. 
감자공원 주민들

벤자민 키한드리아(Benjamin Quijandria) 페루 농업부 차관은 리얼푸드와의 인터뷰에서 “페루엔 4000개의 감자 종이 있다. 한 가지, 한 가지 종류가 각각의 지역과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기능성을 갖고 재배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니세또가 소개한 감자만 해도 10가지(Papa amborcio, Papa Pucasoles, Papa Kekorani, Papa Churillo, Papa Pukualca, Papa Pacocha Zenka, Papa Peruanita, Papa Rukis, Papa Cusis, Papa Bolis, Papas Arinosas, Especies silvestres , Papa Wquia Wacachi)가 넘는다.

그는 “감자의 재배지역은 점차 올라가고 있는 추세다. 감자는 높은 고도에서도 적응을 잘 하는 작물이다”라며 “우리 공동체는 1367개 품종을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도를 바꿔가며 감자를 재배하는 것은 감자의 다양한 품종을 보존하고,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이다. 아니세요 꼬요 꼬요를 비롯한 감자공원의 주민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해왔던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감자를 재배하면서도, 전 세계 유일의 감자 연구소인 ‘국제감자센터’와의 긴밀한 협조로 세계인의 식량 자원을 지켜나가고 있다.

국제감자센터 아나 판타(Ana L. Panta Lalopu) 연구원은 “안데스 산맥의 농부들 덕분에 무수히 많은 감자 종을 보존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며 “기존의 종을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감자 종을 개발하면 농민들에게 가져가 재배를 권하고, 성장 과정을 지켜본다”고 말했다. 전통과 과학으로 세계 감자 종주국으로의 명맥을 지키고 있다.

▶ 페루인에게 감자란?=감자는 세계 4대 작물 중 하나로, 어느 지역에서나 월등한 적응력으로 살아남은 ‘인류의 양식’이다. 페루 사람들에게 감자는 더 특별하다. 페루인에게 감자는 “신이 주신 선물”(아니세또 꼬요꼬요)이자 “영광”(국제감자센터 아나 판타 연구원)이며, “생명의 원천”(벤자민 키한드리아 페루 농업부 차관)이다.

그들의 식문화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감자다. 아니세또 꼬요 꼬요는 “페루에는 감자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없다”며 “요리에 따라 사용하는 감자의 종류가 다르고, 결혼식이나 장례식마다 쓰는 감자가 다르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건조 식품’으로 알려져 있는 추뇨도 만들어진 방식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 추뇨는 안데스 주민들이 흉년을 대비하기 위해 구비해둔 ‘감자로 만든 저장식품’이다. 감자에 서리를 맞혀 수분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추뇨를 만든다.

아니세또 꼬요 꼬요가 가족들과 함께 감자를 살펴보고 있다.


아니세또는 “껍질을 벗겨 흐르는 물에 담가둔 감자로 만든 것은 추뇨 블랑코(chuño blanco)라 하고, 껍질째 사용하면 추뇨 네그로(chuño negro)라 한다”고 말했다.

추뇨 블랑코는 모라야(moraya)라고도 불립니다. 모라야는 이 곳 주민들에겐 소중한 자원이다. 모라야는 쓴맛이 나는 감자 품종으로 해발 4200~4800m에서 재배된다. 이 감자는 저장하기 전 탈수와 동결건조 과정을 거쳐 하얗게 변한 감자다. 

아니세또는 “우리는 추뇨를 만들어 수백년간 식량안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추뇨는 식량안보라는 뜻이다”라며 “추뇨를 만들면 10~15년간 보관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수천 종의 감자가 있지만, 페루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감자는 4가지 정도다. 요리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감자가 쓰인다.

아니세요는 “페루에선 보통 감자 죽류(Papa pure), 감자 튀김(Papa Frita), 삶은 감자(Papa Sancochada), 감자 사우어(Papa Sour, 칵테일 류)로 나눠 감자가 사용된다”며 “모든 페루 요리에 기호에 따라 감자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페루 감자로 만든 전통요리들

감자의 종류마다 맛과 질감, 어울리는 조리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페루 사람들은 각 요리마다 다른 감자 종류를 사용한다. 감자튀김이나 감자스프에 한 종류의 감자를 쓰지 않는다.

현지인에게 감자 종류를 구분해 사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리마 국제공항에서 동시 통역사로 근무 중인 페루인 마리아 델 삘라르(Maris del Pilar) 씨는 “요리에 큰 관심이 없어도 페루 사람들은 많이 먹는 감자는 구분할 수 있다”며 “‘노란 감자’로 불리는 빠빠 아마리아(papa amarilla)는 삶으면 매쉬 포테이토처럼 퍼지는 감자이고, 흰 감자로 불리는 빠빠 블랑카(papa blanca)는 프라이용으로 많이 쓴다”고 술술 말했다. 빠빠 와이로(papa huayro)는 흡수성이 뛰어나 끓여먹거나 으깬 감자 요리에 쓰이고, 빠빠 깐찬(papa canchan)은 페루식 스튜인 귀소(guiso)에 넣어 먹는다. 이 감자는 핑크 포테이토로 불리기도 한다.

‘감자의 고향’인 만큼 맛과 품질도 월등하다. 페루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박진서씨는 “페루 감자에 맛이 길들여지면 한국에서 감자 요리를 먹지 못할 정도로 품질과 맛이 좋다”고 극찬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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