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 뉴스레터
  • 모바일
  • Read
  • 피플
  • 오픈 1년 6개월 만에 미쉐린 별, “엄마에게 드리는 음식처럼 정직하게”-신창호 주옥 셰프
  • 2017.11.27.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겨울을 알리는 비가 기세좋게 쏟아졌다. ‘핫플레이스’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던 시절, 그 때의 ‘트렌드세터’들을 불러모은 곳은 서울 ‘청담동’이었다. 번화가를 조금 비켜난 뒷골목에 ‘주옥’이 자리하고 있다. 작은 간판에 적힌 ‘한글’은 매서운 빗줄기에도 흐트러짐이 없다. 소박하고 정갈하다.

지난해 5월 주옥은 이 곳에 터를 잡았다. “청담동 말고는 달리 아는 데도 없고, 이 골목이 번화가라기보다는 임대료가 저렴했다”며 터를 잡은 이유를 밝혔다. 신창호 셰프는 청담동이 한창 ‘붐’일 때 이 곳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오후 3시를 향해가는 데도 레스토랑은 여전히 분주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손님 연령대도 다양하다. “점심엔 여자 손님들이 대다수예요.”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눈에 띈다. 그새 소문이 퍼졌나 싶지만, ‘주옥’은 사실 등장부터 주목받은 곳이었다. 오픈 이후 이름을 알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식계의 신흥강자’로 불렸다. 그러니 시간문제였다. 결국 주옥은 오픈 1년 6개월 만에 미쉐린가이드 서울에서 별을 받았다. 아담한 레스토랑 안, 발효식초가 한 쪽 벽면을 채웠다. 식재료를 전시한 테이블 위로 미쉐린 트로피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따끈따끈하죠? (웃음)” 
신창호 셰프의 ‘주옥’은 오픈 1년 6개월 만에 2018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별을 받았다.

식당 안은 마지막 코스를 향해가는 손님들의 기분 좋은 식사 소리가 가득 찼다. 직접 담근 식초 테스트를 마친 신창호 셰프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미쉐린 가이드 발표 이틀 후였다.

▶ ‘경계’ 없는 한식 비스트로의 시작 =미쉐린은 ‘익명’이 기본이다. 엄격하고 깐깐한 평가원들이 익명으로 레스토랑을 찾아 음식을 맛보고 간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추정할 만한 평가원의 얼굴도 있을 법 하다.

“아… 너무 많았어요. 처음엔 외국인이 오면 괜히 평가원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끼린 ‘잘해, 잘해’ 그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웃음) 근데 너무 많아지다 보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냥 내려놓고 평상시처럼 하는 거죠.”

대한민국의 쟁쟁한 레스토랑 중 미쉐린의 별을 받는 곳은 고작 26개. 이 안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별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주옥은 속도가 빨랐다. 
신창호 셰프가 직접 만든 발효식초의 향을 맡고 있다.


“일단은 담담해요. 그저 좋다기 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책임감, 뭔가를 더 해야한다는 생각이 커요.”

미쉐린 가이드 발표가 있던 날, 하필이면 “하수구가 막혔다”. 그 후로 이틀 내내 말썽이다.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신창호 셰프와 주옥은 다시 분주해졌다.

주옥은 ‘한식 비스트로’를 표방하지만, 이 곳의 음식엔 경계가 없다. 주옥의 독특함은 신창호 셰프의 요리 철학과 이력에서 비롯된다. 

신창호 셰프는 자신에게 “요리는 평생 직장”이라며 “엄마에게 드리는 음식처럼 정직한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15년을 국내에서만 일하던 신창호 셰프는 30대 중반에서야 새로운 길을 갔다. 미국 마이애미 일식당 ‘노부’로의 요리 유학이었다. “제가 20대 때 국내에서 가장 유명했고, 많은 책을 읽은 곳이 노부였어요. 노부는 미쉐린 스타를 받은 곳은 아니었지만, 꿈의 레스토랑같은 곳이었죠.” 2013년, 서른 다섯, 결혼 8년차. “해외에 나가기엔 너무 늦은 나이였어요. 보통 나갈 생각을 안 하는 나이죠. 저한텐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요리를 했던 아내의 지원은 든든했다. “어릴 때 나가고 싶어도 못 갔던 걸 알기 때문에 보내준 것 같아요.”

노부에서 4년간 경력을 쌓은 뒤, 한국에 돌아와 ‘주옥’을 열었다. 한식은 “군대 간부식당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는 ‘한식’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흔히 말하는 ‘정통 한식’은 아니었다. 그는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 한식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어릴 땐 좀 불만이 있었어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데 셰프든 손님이든 고정관념이 있더라고요. 프렌치는 버터만 써야 하고, 간장은 쓰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요. 특정 재료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음식에 큰 틀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에 갇혀있는 것은 불만이었어요.”

그 생각에 힘을 실어준 건 책으로 만난 ‘롤모델’인 테츠야 와쿠다(Tetsuya Wakuda) 셰프였다. 테츠야 와쿠다 셰프는 ‘재패니즈 프렌치의 1세대’다. 그의 책과 음식을 보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노부에서의 경험도 신 셰프의 요리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굉장히 자유로웠어요. 노부의 음식엔 페루도 있고, 남미도 있고, 모든 나라의 음식이 있어요. 일식이라는 틀에 모든 걸 붙일 수 있더라고요. 지금은 진부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 당시엔 엄청났죠.”
주옥의 저녁 코스 요리 중 하나인 ‘청담육회’는 페이스트리 위에 육회가 올라간 독창적인 식재료의 조합으로 외국인들도 선호하는 음식이다.

‘주옥’이 문을 열자 초창기엔 ‘이게 어떻게 한식이냐’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신 셰프는 된장이든 고추장이든, “외국인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한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한식에 정통하진 못해도 배워가며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저만의 것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초기 메뉴보다는 조금 더 한식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처음엔 한식과 양식이 5대5 정도였다면, 지금은 7대3 정도예요.”

▶ 끝없는 배움의 과정…“엄마에게 드리는 정직한 음식”=주옥을 찾는 손님들이 가장 먼저 맛 보는 음식은 ‘초’(醋)다. 신 셰프는 주옥에서 손수 식초를 담근다.

“솔직히 간장 된장 고추장은 단시간에 제가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소스가 아니었어요. 집에서 한 번 만들어봤더니 식초는 재밌더라고요. 포도가 처음이었어요. 그 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죠.”

아는 게 없다보니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포도가 초를 만들기에 제일 쉬운 재료더라고요. (웃음)” 포도와 같은 베리류의 껍질엔 효모가 많아 술이나 식초로의 완성도가 높다. “실패 확률이 적은 재료였던 거예요.” 시행착오는 많았다. “지난 1년 6개월은 계속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지금까지 만든 식초는 무려 20가지. 그 중 버려진 식초는 7가지나 된다. 아버지가 키운 블루베리로 만든 것은 ‘귀한 재료를 버리게 돼 너무나 아깝고 아쉬운 식초’였다. 지난해 실패를 발판 삼아 올해는 성공. 때에 따라 달라지나, 지금 주옥에 가면 블루베리, 쌀, 레드와인 식초가 맨 처음 제공된다.

주옥의 모든 재료는 신 셰프의 손 끝에서 결정된다. 그는 요리의 첫 번째는 ‘재료’라고 말한다. 재료의 중요함을 알기에 좋은 재료에는 비용도 아끼지 않는다. 달마다 ‘제철 식재료’를 내놓는 것이 원칙이다. 주옥의 입구엔 신 셰프가 직접 선정한 ‘제철 식재료’ 사진이 걸려있다. “그 달에 가장 맛있는 재료가 제철 식재료죠. 1년에 4번, 계절마다 코스에 변화가 있어요. 식재료 선택의 기본은 맛이에요.”

식재료 구입도 셰프가 발품을 판다. 일주일에 두 번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나물을 구입한다. 잎채소류는 경기도 양평의 유기농 농장에서 키운다. “양평 농장에 필요한 걸 말씀드리면 키워주세요. 거기서 허브도 따오고, 오이잎, 당근잎도 맛 보고 꽃도 구해요. 농장에 가서 많이 배워요. 대한민국의 사철에 어떤 채소가 나는지, 유기농으로 키운 채소는 왜 못 생겼는지…. 자연의 이치를 배우고, 식재료를 대하는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돼죠.” 장모님의 텃밭에서 자라는 들깨와 두릅, 매실도 주옥의 주방으로 향한다. “깨를 심어 기름을 만들어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들기름과 두릅을 쓰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주옥엔 ‘주객전도’ 요리도 있다. 강원도 전복소라, 러시아 오세트라 케비어와 같은 값비싼 재료가 들어가는데도 요리의 이름은 ‘들기름’이다. “메인이 들기름이에요. 하하”

식재료를 고르는 셰프의 눈은 까다롭고 꼼꼼하다. 신 셰프는 자신이 검증하지 않은 재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지난 10월 한식재단과 함께 호주 ‘굿 푸드 앤 와인쇼’에 참석할 당시 한우까지 공수해갔다. “가져가면 안되는지 정말 몰랐어요. (웃음) 이유는 하나였어요. 호주 소고기도 엄청 좋잖아요. 하지만 전 제가 먹어보고 판단하지 않은 재료는 사용하지 않아요. 아무리 좋은 고기라도 안 맞을 수도 있고요. 그 불안감을 줄이려고 돌다리도 두드리는 거죠.”

당시 현지에서 선보인 ‘청담육회’는 대성공이었다. 주옥의 저녁 코스에 나오는 메뉴이기도 한 ‘청담육회’에는 한국과 서양이 어우러졌다. 고소한 페이스트리(pastry) 위에 신선한 육회가 올라간다. 탄생과정은 험난했다. ”처음엔 간장으로 해보고 고추장으로도 해봤어요. 그런데 어디서나 파는 육회인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곤드레 누룽지를 만들어 올려보기도 하고, 감자칩을 만들어 올려도 봤죠. 장아찌를 올리니 더 괜찮았고요. 조금씩 변화가 생겨 지금의 청담육회가 나온 거죠.” 
신창호 셰프의 장모님이 직접 키워 짠 들기름으로 만든 요리인 ‘들기름’은 신 셰프가 주옥에서 가장 자랑하는 메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기발한 조합’에 무릎을 치게 된다. 독창적인 식재료의 조합과 담백한 맛이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어우러진다. 그는 한식의 경계를 허문다고, 어울리지 않는 재료를 억지로 한 접시에 내지 않는다. 2018 미쉐린 가이드 서울은 주옥에 대해 “섬세한 플레이팅과 재료에 대한 감각적인 해석으로 음식을 풀어낸다. 창의적인 메뉴가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메뉴를 개발할 때 각 재료간의 조합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써요. 전체적인 흐름에 튀지 않아야 하죠. 쉽지는 않아요. 100개 중 하나 건지는 거예요. 계속 먹어보다 딱 하나 맞았을 때의 희열이 있어요. 그게 요리를 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신 셰프에게 요리는 ‘평생 직장’이다.“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데 요리책에 있어서만큼은 ‘탐독’ 수준이다.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스로 “굉장히 메마른 사람”이라면서 “좋은 요리를 맛볼 땐 살짝 눈물이 나는 것 같다”고도 한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신창호 셰프의 눈엔 지치지 않는 생기가 돈다.

“사람들이 찾는 이 곳이 정성스러운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엄마에게 드리는 음식처럼 정성껏 하자고 항상 이야기해요. 주옥의 음식을 한 마디로요? 정직함이에요.”

shee@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지금 뜨는 리얼푸드]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증거
쌀, 두유, 약과...청년창업가 손에서 '대변신'
맛좀 안다는 사람들이 올해 최고의 음식을 꼽았다
살 빠진다는 '마녀수프'에 카레를 넣었더니...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