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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가 된 뮤지션’ 루시드폴, 귤농사 무농약 인증…“나무도 사람과 같아요”
  •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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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푸드=고승희 기자] 굳이 꼽아 보자면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두 해 사이’ 얼굴은 조금 더 그을렸다. ‘침묵이 더 편해졌고’, ‘나무들과도 벌레들과도 더 친해’졌다. ‘돌봐야 할 나무들도’(이상 루시드폴 ‘안녕’ 중) 꽤 늘었다. 그의 감귤 농장은 1000평. 지난해 이 땅에선 “7톤의 귤”을 수확했다.

“매니저들이 와서 귤을 땄어요. 일일이 박스를 접었고, 포장을 했어요. 손님방에 4명이 쪼그려 자고요. 그 땐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뮤지션의 예민한 감각은 계절의 변화를 살피게 됐다. 농부의 삶으로 접어든 탓이다. 하루의 시작이 빨라졌다. 잠을 청하던 시간에 아침을 맞는다. “원래 밤에 작업을 많이 했죠. 이젠 농사를 짓다 보니 새벽 4시에 눈을 떠요.”

문득 돌아보면 어떤 변화인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찾아왔어요. 결혼을 했기 때문인지, 제주에 왔기 때문인지, 40대가 됐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어요.”

루시드폴(42ㆍ본명 조윤석)은 몇 해 전 ‘농부’가 됐다. 그의 이름 뒤엔 여러 직업이 따라다닌다. 화학도(서울대학교 응용화학부) 출신인 그는 1998년 ‘미선이’ 1집으로 데뷔했다. 줄곧 뮤지션으로 불렸다. 공부는 계속 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원에서 생명공학 박사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실렸다. 특허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저명한 학자가 됐을 지도 모른다. 그 대신 ‘들을 땐 썰렁해도 자기 전에 한번 피식 웃는다’는 ‘스위스 개그’(스위스 유학파 출신 루시드폴의 유머를 부르는 말)로 이름을 날렸다. “만나뵙게 돼서 전라남도 영광이에요.” 오늘로 치면 ‘아재개그’와 근접하다. 조금 앞서 갔다. 이젠 귤 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음악도 만든다. 작가이기도 하고, 여전히 뮤지션이기도 하다. “전업 뮤지션도, 전업 농부도 아니”라지만. 최근 안테나 뮤직 사무실에서 루시드폴을 만났다. 제주에서 올라온 무공해 감귤 향이 서울 강남의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바람은 제주에서부터 불어왔다. 

지난 2014년 제주로 내려가 귤 농사를 짓기 시작한 루시드폴은 올해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그는 “단맛은 직관적이라 사람들은 과일의 당도에 집착하지만 귤은 단맛, 신맛 등 여러 맛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 제주로 가는 길…“쪽파는 농사계의 루시드폴”=2013년이라고 한다. 제주에 내려갈 결심을 했던 때다. “그 땐 회사가 좀 어려웠어요. (유)희열이 형이 회사에 관여하지도 않을 때였죠.” 얼굴을 노출해야 뮤지션도 음악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가요계의 현실이다. “TV에 나가 저를 알리지 않으면 지속가능하게 음악을 할 수 없겠더라고요.” 마지막 승부수로 내놓은 것이 2013년 발매한 6집 앨범(‘꽃은 말이 없다’)이었다. 뮤직비디오도, 별다른 활동도 없었다. “연예인이 되든지, 서울을 떠나든지 해야하겠더라고요. 전 연예인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잘 할 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제주에 대해선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지리도 낯설었다. “그 땐 제주도 지역 이름인 구좌가 어딘지, 아무 것도 몰랐어요.” 연(緣)이라면 연이었을까. 아내는 식물학을 공부했다. 이름도 생소한 ‘벌노랑이’라는 꽃을 연구했다. 2013년 즈음 ‘제주에서 식물 관련 공무원을 모집한다’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제가 도시락을 싸주면 정독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저녁에 만나곤 했어요.” 두세 달 정도였다. 그러다 정말로 제주에 가게 됐다. 인터넷으로 집 매물을 뽑아 들고 제주를 한 바퀴 돌았다.

이듬해 제주 생활과 농부의 삶은 함께 시작됐다. “‘예능은 안 할 거니 농사를 지어야겠다’,  이렇게 된거예요. 무작정이요.” 막상 제주에 가니 ‘무작정’ 마음 먹은 일이 실현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반응은 두 가지였다.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사람들은 ‘시니컬’했다. “네가 무슨 농사냐? 농사는 아무나 짓냐? 장난으로 할 거면 당장 그만둬라.”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은 오히려 좋아하셨어요. ‘작년에 쪽파값도 좋았고, 밭을 빌려 지을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돌아보니 ‘운이 좋았다’고 했다. 처음엔 땅을 빌려볼까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당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을 때 만난 친구들을 졸랐다. “나도 좀 끼워달라 했어요.” 반 년 가까이 일당을 받으며 밭농사를 했고, 감귤 밭을 빌려준 곳이 있어 귤농사도 함께 했다. 그러는 사이 일본 후쿠오카 자연농원으로 농사 유학도 다녀왔다. 
작지만 풍요로운 그의 과수원에 루시드폴은 손수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농사일은 고됐다. “밭농사는 함께 해야 하는 일이 많아요. 저 혼자 빠지고 싶다고 빠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쪽파 농사는 손이 안 가는 곳이 없었다. “쪽파는 정말 뭐랄까. 농사계의 루시드폴이에요. 가내수공업의 끝판왕이죠. 밑천 없이 할 수 있고 수익도 좋지만, 심는 순간부터 포장까지 모든걸 다 해야 해요.” 그 무렵 여러 고민이 따라왔다. 기타를 치던 기다란 손에 흙을 묻히자 “손 마디 마디가 부어올랐다”. “이 일을 하면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전 기타를 치는 사람인데…아파서 약을 많이 먹었어요. 수위 조절을 해야겠더라고요. 밭농사는 ‘월화수목금금금’이라고 보면 돼요. 고민 끝에 감귤만 하게 된 거예요.”

작지만 풍요로운 그의 과수원에 루시드폴은 손수 집을 짓고 살고 있다.

▶ 귤농사 무농약 인증…“나무도 사람과 같아요”=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올해는 “과일 농사에서 가장 골치 아프다”는 ‘해거리’가 찾아왔다. “이 밭에서는 올해가 2년째인데 편차가 심하더라고요. 한 해는 굉장히 많이 열리고 다음해는 쉬는 거예요.” 나무들은 지난해 너무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런 탓에 올해는 지난해의 1/10도 열리지 않았다.

수확량은 아쉬워도 좋은 일이 함께 찾아왔다. 올해는 마침내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유기농 전환 중 무농약 인증’이다. “무농약 인증을 받은 뒤 2~3년을 더 갱신하면 유기농 신청을 할 수 있어요. 무농약과 유기농의 차이는 화학비료를 1/3을 쓰느냐 아니냐에 있어요. 저흰 어차피 쓰지 않으니까요.”

그는 아내와 둘이 처음부터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과수 농사는 밭농사에 비해 쉬운 부분도 있다고 한다. “방제하고 비료를 뿌리는 건 어렵지만 제초는 편해요. 덩굴로 감기는 아이들은 잘라내지만 무릎 중간 정도까지는 그냥 놔두거든요.”

제초제는 당연히 뿌리지 않는다. 그것이 ‘나무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다. “제초제를 뿌려 풀이 죽으면 미생물이 사라져요. 지렁이도 없고요. 지렁이의 분변이나 클로버, 괭이밥 같은 식물은 그 자체로 좋은 거름이고 비료거든요. 풀 뿌리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이 나무와 필요한 양분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도와요.” ‘인위적인 제초’ 대신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공생관계를 지키는 방법’이다.

비료도 직접 만든다. 화학도답게 구조 하나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전공이 조금은 도움이 됐어요.” 현미식초에 패화석(굴껍데기를 이용해 만든 토양개량제)을 녹여 칼슘 액비(액체 상태의 비료)를 만들고, 바실러스균이 많은 청국장과 유용미생물(EM)도 비료로 쓴다. 칼슘 액비는 루시드폴이 직접 만들었다.

“패화석이 칼슘 성분인데 유기화시키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어요. 제가 지금 학교 소속이 아니라 논문을 디테일하게 찾을 순 없었어요. 칼슘과 아세트에시드를 2 :1로 반응시키고, 과량으로 남은 패화석을 걸러내 만들어봤어요. 오래 반응을 시키니 초산 냄새가 사라지고, 바다 냄새가 나더라고요. 쓸 수 있는 상태가 된 거죠.”

어려운 용어들이 입에 착착 감겼다. ‘키 포인트’는 ‘하나’라고 한다. “나무에게 먹을 것을 줄 때 무엇을 제일 좋아할까 생각하는 거죠. 나무도 사람과 똑같아요. 질소도 비타민도 탄수화물도 필요할 거예요. 이걸 아미노산의 형태로 주는 것이 흡수가 잘 돼요. 그래서 칼슘을 유기액비로 만든 거예요.”

귤농사 4년차.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열매를 얼마나 맺을지”, “봄순과 가을순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한다. 

“농부의 마음이 어떤 건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베란다에서 상추 하나, 고추 몇 개를 키우는 사람부터 몇 만평 농사를 짓는 사람까지 모두가 농부라고 생각해요. 생명을 가꾸는 사람들이죠. 다양한 모습으로 자기에게 맞는 규모로, 맞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 돼요. 저 역시 제 삶에 가장 맞는 방식으로 나무를 돌봐요. 나무를 통해 얻은 귤들을 세상에 돌릴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며 살고요. 다른 목표는 없어요. 이 나무들을 더 지속가능하게, 더 건강하게 키우는 것 말고는요. 많은 시간이 걸릴 거예요. 저금하는 기분으로 나무들을 돌보고 있어요.”

shee@heraldcorp.com

[사진=안테나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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