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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의 역습, 식탁의 배신]<수산편①>“오분자기는 씨가 마르고, 11월에 여름생선이 잡힌다”
  • 2018.01.11.
- 수온 상승으로 제주 전복ㆍ오분자기 생산량 급감
- 수온 떨어지는 시기 늦어져 11월에도 여름 생선 등장
- 자리돔 등 토착종 사라지고, 고등어 갈치 등 이동성 어종 득세

[리얼푸드=(제주) 고승희 기자] 지난해 11월말 첫 한파주의보로 한반도가 꽁꽁 얼어버린 날, 제주는 영상 17℃까지 기온이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주의 평균 기온은 1950년 15℃에서 2016년 17℃로 2℃가 올랐다.

12월을 코앞에 두고도 아직 겨울은 오지 않았다. 온화한 바닷바람이 제주 위미항을 포근하게 감쌌다. 위미항의 해녀들은 배를 타고 지귀도로 나가 물질을 한다. 30년째 물질을 해온 강복선 해녀는 ‘바다가 저금통장’이던 좋은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 했다.

“전복은 점점 줄고 있고, 오분자기는 씨가 말랐어요. 이제 오분자기는 잡으려는 생각도 안해요.” 
30년간 물질을 해온 강복선 해녀는 “지금 제주 바다에선 전복은 사라지고 오분자기는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보름에 한 번씩 ‘물 때’가 돌아오면 길게는 열흘 정도 바다에 나갔다. 지금은 바다로 향하는 날도 줄었다. “잡을 것이 없거나, 잡아봐야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 해양수산연구원에 따르면 제주의 주요 어업구조 중 하나인 마을어업(해녀들의 물질)에는 4005명의 해녀들이 종사하고 있다. 소라, 전복, 해삼, 성게, 톳은 해녀들의 주요 소득원이다. 현재민 해양수산연구원 수산종자연구과장은 “환경이 너무 바뀌어서 과거 전통적으로 잡던 전복과 오분자기는 멸종 단계까지 왔다”며 “해녀들이 소득화할 수 있는 종들은 먹고 사는 풀(먹이)이 없어 멸종 위기가 눈 앞에 닥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반도의 남쪽, ‘태풍의 길목’에 위치한 제주 바다는 이미 수년째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기후변화를 겪으며 바닷속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제주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인근에선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 전복과 오분자기의 전멸=바다의 온도가 올라가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패류’다. 연평균 꾸준한 수온 상승(0.01℃)을 기록한 제주에서 그 현상은 두드러진다.

현재민 과장은 “지금 제주 바다의 연평균 수온은 14℃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즉 최하점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다”라며 “수온이 높아지면 산소가 부족해져 패류가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고 말했다. 물고기 종류는 다른 해역으로 이동할 수 있어 양식이 아니라면 피해가 덜 하다.

실제로 오분자기와 전복 생산량은 해마다 줄었다. 고준철 박사는 “예전엔 150톤까지 잡히던 오분자기는 2010년부터 급격히 줄어 2011년부터 8톤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2010년은 제주의 아열대화가 나타난 시점이다. 해양수산연구원에 따르면 오분자기 생산량은 2015년, 2016년엔 4톤 밖에 되지 않았다. 오분자기는 제주의 토속 생물이지만, 이젠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고 박사는 “4~5톤의 생산량은 거의 잡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전복도 다르지 않다. 현재민 과장은 “우리나라엔 총 6종의 전복이 있는데 그 중 5종이 제주에 있다”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종인 ‘왕전복’은 제주에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사라졌다. 멸종된 상태다”고 말했다. 전복의 전체 생산량도 줄었다. 2010년부터 감소 추세에 접어들어 2011년엔 33톤, 2013년엔 24.9톤으로 줄었다. 해녀들의 생산량도 급격히 줄었다. 1995년만 해도 44톤이나 됐으나, 2013년엔 5.5톤으로 떨어졌다. 

전복과 오분자기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기후변화와 난개발로 ‘갯녹음 현상’이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해녀들의 체감 온도는 상당하다. 강복선 해녀는 “갯녹음 현상은 점점 심해졌지 좋아지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갯녹음은 미역이나 다시마, 감태와 같은 해조류가 무성한 바다숲이 사라지고 하얀 석회조류가 뒤덮는 ‘사막화 현상’(백화현상)이다.

강복선 씨는 “3~4년 전만 해도 지귀도엔 톳이 엄청 많았는데 3년 전부터 전멸하기 시작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물 위에 둥둥 뜰 정도로 넘쳐났던 모자반은 물 밑에서 겨우 모습을 드러내고, 감태도 갯바위에선 자취를 감췄다.

고준철 박사는 “갯녹음 현상이 나타나는 해역에선 서식하는 종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며 “이런 바다는 황폐화되고 종이 사라지게 된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이미 오분자기와 전복이 영향을 받았다. 이젠 소라도 문제다. 강복선 해녀는 “10월부터는 소라를 잡는 시기인데, 먹이가 없으니 소라가 잘다”고 말했다. 제주수산연구소에 따르면 아열대 해역에서 사는 거품돌산호가 갯녹음 해역으로 들어와 암반을 뒤덮는 현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고준철 박사는 “최근엔 소라가 기본 소득원이 됐는데, 거품돌산호가 있는 지역에선 소라가 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갯녹음 지역은 나날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2004년 31.4%에서 2016년에는 35.3%로 늘었다. 현재민 과장은 “예전엔 제주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나타났는데, 이젠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얕은 지역에서 나타나던 갯녹음 현상은 7m까지 내려갔고, 심한 곳은 10m까지 나타나고 있는”(현재민 과장) 상황이다. 해녀들이 조업하는 지역이 바로 수심 7~10m. 강복선 해녀는 “15m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내 경우) 10~13m에서 작업한다”고 했다. 해녀들이 갈 수 있는 바다는 갯녹음 현상으로 잡을 것이 없다. 저승과 이승 사이를 오가며 물질을 해도 빈손으로 올라오는 일이 허다해졌다. 
제주 해역 어획 조사 현장 [사진=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제공]

▶ 겨울에도 여름 생선이, 토착종 대신 이동성 어종이=11월에 접어들어도 ‘바다의 계절’은 느리다.

이재천 제주 해비치호텔앤리조트 총주방장은 “11월 초에 낚시를 나가도 여전히 여름 생선이 잡힌다”며 “바다는 아직도 초가을 날씨”라고 말했다. 모슬포 방어 축제의 시기도 늦춰졌다. “2010년엔 11월 4일에 시작했는데 2017년엔 11월 30일에 시작해 12월 3일에 끝났다”(이재천 총주방장)고 한다.

수온이 떨어지는 시기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고준철 박사는 “과거엔 11월 초부터 수온이 20℃ 이하로 떨어졌는데, 지금은 수온이 떨어지는 시기가 한 달 정도 늦춰졌다”고 말했다. 최상급 식재료를 취급하는 호텔에서도 변화를 절감한다. 이재천 총주방장은 “이제 제철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며 “한두달 씩 밀리며 시기가 늦춰진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의 수온 상승은 어업 환경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어종의 서식환경이 달라지고, 어장의 위치가 변화’(고준철 박사)한다. 고준철 박사는 “동해에 명태와 같은 한류성 어종이 사라지고 난류성 어종이 올라가는 것처럼 제주에도 변화가 나타난다”며 “자리돔과 같은 제주 토착어종은 물론 주걱치, 청줄돔, 놀래기류 등 서식종이 난류를 따라 울릉도와 독도까지 올라가고, 참다랑어(참치)가 제주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수온 변화는 회유성 어종인 방어와 고등어, 갈치 등의 어장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반도 전 해역의 수온이 올라가면서도 최근 몇해 제주 수온은 들쑥날쑥해지며 회유성 어종의 이동 시기와 경로에도 변화가 보였다. 방어는 수온과 주요 먹이인 자리돔을 따라 동해까지 이동했다가 10월이 되면 제주 해역으로 다시 내려온다. 하지만 몇 해 사이 강원도 앞바다에 어장이 형성, 제주에서의 방어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2014년 1031톤에서 2015년 451톤으로 급감했다.
파래가 번식한 제주 해역 [사진=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제공]

바다 생태계의 변화는 두 얼굴을 하고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 접근하면 “바닷속 다양성 증가”와 “제주 토착어종의 서식지 확대”(고준철 박사)라는 긍정적 의미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서식처의 소실’이라는 부정적 의미로도 해석된다. 제주의 토착종이 사라지고 이동성 어종만 남는다는 우려다.

제주의 자리돔은 통영, 거제, 울릉도로 북상했고,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는 제주 근해에 자리잡았다. 현재민 과장은 “이동성 종이 제주에 터를 잡고 살고 있고, 기존 토착종은 서식처를 잃고 새 정착지를 찾아 떠나버리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제주 바다 속에서 토착어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경제성의 문제’다. 현재민 과장은 “지금은 물고기가 한 마리가 있는데, 조업하는 배는 열 척이 있는 꼴”이라며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과거 제주를 떠받치던 경제 어종(토착종)들은 더이상 수익을 내지 못한다. 다금바리와 자리돔은 잡히지 않으니, 어민들은 시기에 따라 고등어 갈치 오징어 잡이로 생계를 꾸린다. 어업 환경이 ‘정착성 종에서 이동성 어종으로’ 전환됐다. 또한 제주에서 생산해 제주 소비가 가장 높았던 자리돔은 통영 등 외부에서 공수해 소비하는 상황이라는 게 현재민 과장의 설명이다.

게다가 새로운 어종은 주요 소득원으로 삼을 수가 없다. 현 과장은 “참치를 비롯해 새로운 물고기들이 제주 바다 속으로 밀려들었지만, 우리가 조업하던 어획종이 아니라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이번 기획보도는 삼성언론재단이 공모한 기획취재 지원사업 선정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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