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스타그램
  • 뉴스레터
  • 모바일
  • GO GREEN
  • [지구의 역습, 식탁의 배신]<수산편④>“오징어 배를 가르면 알이 안 보인다”
  • 2018.01.24.
- 정영환 전국채낚기 울릉어업인연합회장 인터뷰

[리얼푸드=(울릉) 박준규 기자] ‘위기의 울릉도’에 사는 어민들의 속은 타들어 간다. 워낙 답답해 지나간 영광의 시절을 돌이켜보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매년 눈에 띄게 상황이 나빠지는 울릉도 오징어 어업. 섬 어민들을 대표하는 정영환(60ㆍ사진) 전국채낚기 울릉어업인연합회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40년 째 울릉도에서 오징어를 잡아온 뱃사람이다.

“매일 아침에 위판장에서 바로 오징어 배를 갈라보면 알이 안 보여요. 그걸 보면 가장 불안해 집니다. 오징어가 알을 품고 있어야 나중에 산란을 하는데 그게 없다면 앞으로 충분한 개체수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니까요.” 정 회장은 오징어 알 얘기부터 꺼냈다. “중국어선들이 무분별한 ‘싹쓸이’ 조업을 하면서 오징어의 수정을 방해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정영환 전국채낚기 울릉어업인협합회장. 항구에 정박한 어선 앞에 섰다.

요즘 울릉 어민들은 모이기만 하면 신세한탄이다. “이러다간 오징어도 명태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1970~80년대까지 동해 바다에서 잡히는 대표적인 어종이던 ‘국민 생선’ 명태는 이제 연간 어획량이 5t도 안된다. 국내산 명태는 사실상 우리 바다와 식탁에서 사라졌다.

정영환 회장은 “오징어를 못 잡으니 어민들 생계가 당장 위협받죠. 대부분이 그래요. 그러니까 빚에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막 자식을 대학 보냈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들은 진짜 죽을 맛이에요.” 정 회장에 따르면 어민들이 고기잡이로 벌어들이는 연간 평균소득이 1000만원 밑으로 떨어진 게 어느덧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배에서 일하겠다고 나서는 젊은이가 없다. 김형수 울릉수협 조합장은 “경상북도청이 매년 어업 후계자를 모집하는데 육지의 25~30t짜리 배는 어렵지 않게 후계인을 찾는다. 하지만 울릉도에선 나서는 이가 없다”고 말했다. 

선원과 수협 직원들이 오징어를 배에서 내리고 있다.

부족한 일손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청년들이 대신한다. 현재 울릉도에선 외국인 선원 25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선원들에게 임금을 쥐어줄 형편이 안 되는 선주들은 외국인 선원을 육지로 돌려보낸다.

정 회장은 스무살부터 어선에 탔다. 그 시절엔 뭍으로 나가서 대학을 가거나 일자리 찾는 이들보단, 물고기 잡이를 배우는 청년들이 많았다. 좋은 시절이었다.

“80~90년대엔 생계에 대한 걱정은 없었어요. 바다에 오징어가 풍요롭게 형성돼 있으니 (어민들 사이에) 격차도 없었고요. A라는 사람이 300급(1급은 20마리)을 잡으면 B는 250급은 잡아요. 이 정도면 고르게 먹고 살 수 있었다는 겁니다. 고기를 전혀 못 잡는 배가 있으면 잘 잡는 배가 뒤에 줄을 걸어서 매달아요. 하루 경비라도 벌 수 있게 상부상조했던 거죠.”

하지만 요즘 울릉도 어민사회의 표정은 달라졌다. 정 회장은 “그때의 그런 분위기 자체가 없어요. 예전엔 기상특보가 떨어져서 바다에 못 나가면 너나없이 돈을 얼마씩 내 동료들과 술을 나누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여력마저 없어졌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국내 대형 트롤어선도 오징어 개체수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트롤어선은 대형 그물을 바다 깊숙이 던져 넣고 배를 이동하면서 고기떼를 그물에 담는 방식으로 조업한다. 울릉도 어민들의 ‘채낚기 방식’(긴 낚싯줄에 한 마리씩 채는 방식)보다 더 많은 물고기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
위판장 한쪽에선 오징어를 손질하는 주민들이 있다.

“부산이나 동해 선적의 기업형 트롤어선들도 울릉도 인근까지 돌면서 채낚기어선과 공조조업을 해요. 자기들이 잡을 물고기를 자기들이 씨를 말리는 겁니다. 이달 초부터 독도 주변에도 어군이 형성됐는데 트롤 선단이 활개를 쳤습니다.”

트롤어선과 채낚기어선의 공조는 이런 식이다. 집어등을 밝힌 채낚기어선이 오징어떼를 유인하면, 주변에 그물을 풀어둔 트롤선이 채낚기선 옆을 지나가면서 떼지은 고기를 쓸어담는 식이다. 이는 싹쓸이 조업의 하나로 불법이다. 하지만 만선(滿船) 유혹은 쉽게 떨쳐내질 못한다. 이달 초 포항해양경찰서는 동해상에서 불법 공조조업을 벌인 트롤어선ㆍ채낚기선 선장을 비롯해 39명을 입건했다. 수산자원관리법을 위반한 혐의다.
 
“오징어는 울릉도의 오랜 상징입니다. 자원을 남겨서 우리 자식들도 오징어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울릉 어민들 중에서 그나마 젊은 어민이 50대예요. 이게 이어지면 언젠가 우리 수산업도 끝이 난다는 것 아닙니까.”

nyang@heraldcorp.com

[관련기사]
[지구의 역습, 식탁의 배신]<수산편④> 동해안 어업, 앞으로 100년을 준비한다
[지구의 역습, 식탁의 배신]<수산편③>“오징어, 해방 이후 가장 적게 잡힌다”
[지구의 역습, 식탁의 배신]<수산편②>“제주 바다는 소리없는 전쟁 중”…밀려드는 아열대 어종
[지구의 역습, 식탁의 배신]“전복은 사라지고, 오징어는 녹는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