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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국내 최초 여성 사카쇼, 신지은의 사케 인생
  •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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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타 워커힐 일식당 ‘모에기’ 13년차 신지은 캡틴
-국내 최초 여성 사카쇼…국내 4번째 전세계 321번째
-‘사케는 입안을 깨끗히 정돈시키는 은은한 매력의 술’


와인이 낭만과 분위기를 담당한다면, 맥주는 에너지와 청량감을, 소주는 복잡다단한 인생의 맛을 담당한다. 사케는 어떠한가. 올드한 술, 누룩향 강한 술, 아재들의 술…. 무지와 편견으로 주류의 선호도서 살짝 떨어져있는 게 사실이다.
워커힐 비스타 일식당 ‘모에기’ 신지은 캡틴. 국내 최초로 여성 사카쇼를 획득하고 사케를 알리고 있다.

“사케는 은은하게 입안을 정돈시켜 주는 매력이 있어요. 사케를 편의점에서 맥주를 고르듯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워커힐 비스타 일식당 모에기(MOEGI) 신지은(33) 캡틴의 말이다. 그녀는 일본 소주와 사케에 관한 장인으로 불리는 ‘사카쇼’(酒匠ㆍ사케 소믈리에와 소주 어드바이저 자격을 갖춘 사람만 응시할 수 있는 사케 프로테이스터) 자격 보유자다. 사카쇼 신지은 앞에는 ‘국내 여성 최초’ 라는 특별한 수식이 붙는다. 그녀를 최근 모에기에서 직접 만났다. 
사케 소믈리에 대회에 출전한 신지은 매니저 모습.

▶귀신같은 입맛, 쓸모가 있었다=“‘입맛 한 번 귀신이네’. 어릴 적부터 엄마가 하신 말씀이에요. 김장날에는 간보기 전문이었죠. ‘엄마, 다진 마늘이 빠진 것 같은데?’ 하면 정말 손도 안 된 마늘이 옆에 있었어요. 그러고 나니 뭘 먹어도 분석하는 습관이 생겼죠. 단순히 짜다 달다 싱겁다가 아니라 맛과 향을 심층적으로 음미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예민한 혀는 결국 재능이 됐다. 타고난 악바리 기질도 있었다. 그녀 말을 빌리자면 ‘공부 빼고는’ 말이다. 육상선수였던 학창시절에는 남자들에 지는 게 분통해 곱절로 연습했다. 14초(100m)에 들어와도 선방인 것을 이를 악물고 13초에 뛰었다. 집요한 근성은 지금의 사케 전문가가 되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워커힐 일식당 입사 후, 동료들과 동강 래프팅을 갔는데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죠. 후두두둑 빗방울이 천막에 떨어져 굴러내렸고 스키야키는 지글지글 끓고…. 그때 선배가 꺼낸 핫카이산 준마이긴죠를 한 잔 넘겼어요.”

사랑은 불시에 일어나는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 했나. 그렇게 신지은은 사케와 사랑에 빠졌다. “사케가 이런 맛이었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랐어요. 풍부한 과실향, 입안을 싹 정돈 시켜주는 깔끔한 뒷맛, 부드러움 목넘김. 새삼 사케를 제대로 알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2006년 모에기에 입사한 신 매니저는 2012년 숭실대학교 사케소믈리에 과정을 통해 사케전문가로 거듭났다. ‘SSI’(Sake Service Instituteㆍ일본사케서비스협회)의 사케 소믈리에 인증자격인 기키자케시와 일본 소주 전문가 자격증인 쇼추 기키자케시를 차례로 땄다. 이것만도 사케전문가라 불렸지만, 끝을 보고 싶었다. 일본 사케 전문가도 따기 힘들다는 사카쇼에 도전했다. 이를 위해 사케 스승(이덕희)도 그녀를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20~30종의 사케 테이스팅은 시험을 코앞에 두고 100여종으로 늘었다. “200여 가지 사케와 일본 소주를 블라인드 테스트로 맞추고 맛을 그래프 형식으로 그려내야 하는 실기시험을 치렀죠. 실선 하나라도 잘못 그으면 탈락인지라 예민하게 맛을 판별하기 위해 온신경을 집중시켰어요.” 두 번의 쓴맛을 겪고 나서야 드디어 사카쇼 자격을 얻었다. 국내서는 4번째, 세계 321번째였다. 모든 시험은 일본어로, 현지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벙어리 삼룡이 수준이던 일본어는 이제 수준급에 달한다. 
워커힐 비스타 일식당 ‘모에기’ 신지은 캡틴. 국내 최초로 여성 사카쇼를 획득하고 사케를 알리고 있다.

▶‘올드한 술’, 편견깨는 사케 전도사=모에기에서는 어렵고 딱딱한 설명 대신 투박하지만 재치있는 신 캡틴의 사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케 문외한 이라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소주파에게는 계열(?)로 나누어 취향을 파악한다. ‘참이슬’이냐, ‘처음처럼’이냐 그것도 아니라면 ‘자몽에이슬’이냐 묻는 식이다.

“참이슬보다는 처음처럼이 조금 더 단맛이 강해요. 일단 사케를 골라드리고 음식에 맞춰서 사케를 데워드리기도 해요. 코스마다 180ml 씩 매칭을 시켜서 흰살 생선부터 붉은생선류, 버터야키, 구이류 등 그때 그때 음식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페어링을 제공합니다.”

신 캡틴이 골라주는 사케는 모에기의 정통일식과 어우러져 절정의 풍미를 이룬다.

“사케 리스트를 보면 ‘00 준마이 다이긴죠’, ‘00 준마이 혼죠조’ 라고 쓰여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맨 앞 단어는 브랜드명, 지역명을 뜻하고 ‘준마이’는 순수한 쌀이라는 뜻이죠. 오로지 쌀과 누룩, 물로 만든 술에만 쓸 수 있는 명칭이죠. 준마이 뒤에는 쌀을 얼마나 도정했는지에 따른 이름이 붙어요. ‘준마이’라는 이름이 없는 사케는 양조 알코올이 함유되어 있는 술입니다. 정미율이 낮은 순서에 따라 다이긴죠(50%), 긴죠(50~60%), 혼죠조(60~70%), 보통주(70%) 등으로 등급이 나뉘는데요. 정미율 퍼센트가 낮을수록 풍미가 화려하고 단맛이 납니다.”

신 캡틴이 추천하는 최고의 사케 궁합은 어떤 것일까. “담백하고 시원한 복 지리에 가라쿠치 타입 사케가 좋아요. 드라이하고 쌉쌀하지만 감칠맛이 올라오지요. 데판야키에는 오토코야마 토쿠베츠 준마이를 추천해요. 해산물과 함께 했을 때 풍미가 살아납니다.”

모에기에는 데판야키 런치ㆍ디너(로브스터와 생선회 3종 추가) 코스가 준비돼있다. 사케 매너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일본에서는 사케를 마실 때 상대의 잔이 비면 큰 결례로 여겨요. 술잔이 허전할 틈 없도록 찰랑찰랑 넘지게 따라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녀의 소박한 꿈은 사케를 편하게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모에기를 방문한 손님들이 만족할 수 있는 최상의 사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나아가 사케의 편견을 깨고 누구나 쉽고 즐겁게 사케를 즐길 수 있도록 열심히 알리고 싶어요.”

김지윤 기자/summ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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