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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로운 채식생활]‘힙’한 채식인 ‘너티즈’, 우리는 이래서 채식을 시작했다.
  •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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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채식’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푸드 트렌드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채식주의가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인기를 모으며 ‘베지노믹스’(베지터블과 이코노믹스의 합성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고, 채식인을 겨냥한 대체 식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대한민국 채식 인구는 약 100~150만명. 하지만 채식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주위의 불편한 시선도 여전하다. 개인의 건강은 물론 나아가 지구환경까지 살리는 채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리얼푸드가 캠페인성 기획 시리즈인 ‘슬기로운 채식생활’을 시작한다. 프리미엄 내추럴푸드 기업으로 국내 채식 트렌드를 선도해 온 올가니카도 뜻을 같이했다. 앞으로 채식인과 채식동호회를 비롯 채식식품을 만드는 기업과 식당, 전문가 등의 취재를 통해 올바른 채식문화를 전파하고, 채식 대중화에도 기여코자 한다. 시리즈의 첫선으로 일찌감치 ‘채식 혁명’의 길로 접어든 각계각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여기 육수에 뭐가 들어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어딜 가든 자연스럽게 묻는다. 기왕이면 당당하게. 이 역시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20대 젊은 채식인들의 식사 주문은 ‘속사포 래퍼’ 못지 않다. 김밥 한 줄도 꼼꼼하게. “햄하고 맛살, 마요네즈, 계란은 빼고 주세요.” 순두부찌개 전문점에선 “조개하고 계란, 육수 빼고 맹물에 주세요.”라고 요청한다. 식사 후 들린 스타벅스에서도 ‘옵션’은 있다. “우유 대신 두유요!”

대한민국에서 비건(vegan)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육류는 물론 어류, 유제품까지 섭취하지 않는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비건에겐 따져볼 일들이 많다. 돌아오는 반응이야 매한가지. “너, 이것도 안 먹어?”, “어머, 너무 힘들겠다. 난 못해”.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
20대 채식인 단체 너티즈(Nutties)의 안백린, 이혜수 씨는 “채식은 즐겁과 힙한 것”이라고 말했다.

천만의 말씀. 전혀 ‘심심’하지 않다. 게다가 힘들지도 않다. ‘금욕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에게도 ‘채식’은 날 때부터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채식은 제가 관심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판단해 생활방식으로 가져온 것 뿐이에요. 엄격한 생활방식이라기 보단 좀 더 자기만의 가치관을 추구하는 거죠.” (김수현)

같은 생각으로 20대 젊은 채식인 4명(김수현, 안백린, 윤수빈, 이혜수)이 모였다. ‘채식주의자 모임’ 너티즈(Nutties)다. 잘 먹고 잘 놀기 위해서, 채식주의자도 ‘잘 논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들에게 채식은 그 자체로 ‘트렌드’다. 최근 서울 이태원의 한 비건 카페에서 너티즈 4인방을 만나 ‘힙’(hip)한 채식 이야기를 들었다.

■ 나는 이래서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을 시작한 계기는 저마다 달랐다. 채식 이전엔 네 사람 모두 ‘미트(meat)테리언’이라 불릴 만한 식성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먹는 돼지고기의 양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거예요.” (안백린) 순대곱창도 거뜬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운명’처럼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됐다. 
너티즈의 김수현 씨는 “채식에 대한 편견이 많다”며 “잠재적 채식주의자도 장벽 없이 채식을 접하고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채식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현(26) : 플렉시테리안(Flexitarian, 채식을 고수하면서 경우에 따라 육류나 생선도 먹는 식생활)으로 시작했어요. 채식을 한 지는 2~3년 정도 됐고, 고기를 완전히 끊은 것은 작년 5월이에요. 처음 채식을 할 때 가장 큰 동기로 작용했던 것은 건강이었어요. 그러다 ‘이팅 애니멀스’(Eating Animals)라는 책이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포크 오버 나이브스(forks over knives)’를 보며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알게 됐어요. 이걸 식생활로 연결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건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였어요. 바르셀로나엔 워낙 다양한 문화가 있다 보니 비건 식당도 인기있는 곳 중 하나였어요.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어요.

안백린(26) :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플렉시테리안으로 시작했어요. 대학 때 의료생물학을 공부하면서 비만이나 호르몬 문제에 관심을 가졌어요. 시작은 체중 관리, 자기 관리 차원이었죠. 그러다 석사 공부를 할 때 정신건강과 윤리적 선택에 대한 공부를 했고, ‘생명을 해치며 먹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서 비건이 됐어요. 비건이 된 건 2~3년 정도예요.

윤수빈(25) : 캐나다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 채식을 시작했어요. 캐나다는 ‘비건 헤븐’이라고 부를 만큼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요. 호기심에 거리 마켓에서 음식을 먹어보기도 했고, 학교 수업 중 채식을 해보는 과제가 있었어요. 사실 그 때는 일시적인 인지 정도였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 학교 동기인 (김)수현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채식을 이야기의 주제로 나누다 보니 관심이 깊어지더라고요. 채식을 한 지는 1년 정도 됐어요.

이혜수(21) : 초등학생 때 반려동물로 새를 키웠어요. 새를 키우면서도 정서적 교감을 하게 되더라고요. 울음소리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지고, 마음이 상한 상태가 어떤 건지 알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동물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됐어요. 이후 고등학교 1학년 때 개고기 영상을 접하며 페스코(Pesco, 육류만 먹지 않는 채식)로 채식을 시작했어요. 그 전엔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기 뷔페를 갈 정도였죠. 지금은 채식 6년차예요. 페스코로 시작해 3년, 비건으로 지낸지 3년이 됐어요. 
너티즈의 대표이자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수현 씨(왼쪽), 너티즈의 멤버이자 고려대학교 채식 동아리 ‘뿌리:침’ 회장인 이혜수 씨(오른쪽).

■ 채식, 입맛도 가치관도 바꿨다

한 해 두 해 ‘채식인’으로 살다 보니 달라진 점도 많다. 입맛도 당연히 변했다. 윤수빈 씨는 “전에는 버터를 정말 좋아했다. 최근 오랜만에 먹을 일이 있었는데 한 번 입을 대니 너무 역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치킨, 우유, 빵 등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들에 대한 ‘맛 평가’ 기준이 달라졌다.

“냄새부터 역하고 맛이 없더라고요. 사실 음식은 맛이 있어야 먹는 거잖아요. 저희한테 이젠 맛있는 음식이 아닌 거죠.” (안백린) “저도 그렇더라고요. 입맛은 확실히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혜수)

채식인이 단계에 따라 어류, 유제품, 육류의 섭취를 제한하는 것은 먹고 싶은 갈망을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다. 이들 네 사람은 “먹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혜수 씨는 “아예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분류돼 있다”며 “플라스틱을 못 먹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식은 금욕주의가 아니에요. 욕구의 방향성을 바꾸는 거죠. 욕구를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가느냐가 핵심이에요.”(이혜수)

달라진 것은 또 있다. 채식은 인간관계부터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네 사람의 삶 속에서 다양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사실 누군가 편견을 가질까 두려워요. 채식을 한 이후 사람들과의 관계, 관계에서 저의 태도가 달라졌어요. 채식으로 인해 대다수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인식하는 점 하나가 생긴 거니까요. 먹는다는 건 단지 먹는 것이 아닌 문화적인 활동이잖아요. 가까운 사람들이 나와의 활동엔 제한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게 가장 두려운 것 같아요.” (김수현)
20대 채식주의자인 윤수빈, 안백린, 김수현, 이혜수(왼쪽부터) 씨가 만든 너티즈는 채식과 채식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기 위해 만들어진 비건 단체다.


그래서인지 수현 씨는 친구들과의 만날 때 ‘맛집 검색’의 달인이 됐다. 서로가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만족할 수 있는 식사 장소를 먼저 찾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채식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무거울 때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항상 배려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은 언제나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들게한다.“채식주의자가 잘못은 아닌데, 그런 상황이 늘 찾아오는 건 마음이 아파요.”(이혜수) 하지만 이들에게 그 과정은 저마다의 신념을 다지고, 더 많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등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이들에게 채식은 가치관이자, 성장의 과정이며, 자신들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용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의 채식은 ‘힙’하다.

“동물권은 현재 대두되는 권리 운동도 아니고 소수만이 관심을 가지는 문제예요. 그게 제 삶의 방식에 녹아들다 보니 동물권부터 시작해 다른 권력구조나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김수현)

“소외계층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동물은 관심의 열외에 있는 존재예요. 가장 하위에 있는 존재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면 다른 관계도 바뀌게 되더라고요. 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내가 나와 맺는 관계도 달라져 자기성찰을 많이 하게 돼요.” (이혜수)

너티즈의 채식인 행사를 준비 중인 안백린 씨(왼쪽)와 김수현 씨(오른쪽).

윤수빈 씨도 ‘자기 성찰’을 많이 하게 된다는 데에 동의했다. 특히 수빈 씨의 경우 “물건을 하나 살 때에도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됐는지를 고려하게 된다”며 “구매를 결정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졌다”고 말하며 웃었다.

채식을 시작하며 삶의 방향성은 보다 뚜렷해졌다. 안백린 씨는 석사 과정 이후 채식을 주제로 한 칼럼을 쓰는 것은 물론 비건 셰프로도 활동하고 있다. “채식을 하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고히 알게 됐고, 이 분야에 열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비거니즘으로 나아가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산다고 느껴져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게 됐어요.”

shee@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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