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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기로운 채식 생활]“섭식장애 15년, 비건 로푸드로 달라진 삶”…김여운 로푸드 강사
  • 201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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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푸드=고승희 기자] 애초부터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섭식장애를 앓아온 시간이 길었다. “15년 정도예요.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으니까요.” 지옥 같은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 해본 치료가 없었다. “로푸드는 제가 도전했던 여러 섭식 방법 중 하나였어요.” 불과 4년 전, 비건 로푸드(raw food)를 접한 뒤 김여운(35) 대표의 인생이 달라졌다.

봄기운이 완연한 토요일 오후, 서울 인사동에서 김여운 대표를 만났다. 이제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 로푸드(한국 디톡스 앤 로푸드 협회 강사)를 가르치고, 공감대를 쌓을 수 있는 모임(비로소 채식 모임 대표)을 통해 건강한 식단을 나누고 있다. 화사한 미소에선 섭식 장애로 지쳤던 시간의 흔적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김여운 대표에게 지난 시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로푸드 강사’ 겸 비로소채식 모임 김여운 대표를 서울 인사동 실다연에서 만났다.

▶48kg의 강박…폭식과 절식의 반복=몇 해전 한 걸그룹 멤버는 거식증으로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했다.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44사이즈’, ‘인형 몸매’, ‘젓가락 몸매’가 ‘미의 기준’이 되자,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강박에 시달렸다.

“48㎏이 아닌 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상징적 의미의 48㎏이죠. 이젠 55도 아닌 44사이즈를 이야기 하잖아요. 저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니 그 프레임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런 틀에 저를 가둬놓고 ‘난 날씬해야 한다’며 학대했어요. 전 48㎏이 아니었거든요.”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은 김여운 대표의 오랜 시간을 괴롭혀왔다. 극단적인 폭식과 절식을 반복했다. 그가 앓던 섭식장애 유형은 ‘제거형 폭식증’. 증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먹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식사를 한 뒤 먹은 것을 다 토해냈어요. 전에는 이런 방식으로 음식을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스스로 먹고 삼키는 것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걸 이 때 처음 알게 됐어요.”

섭식장애가 심해진 것은 무리한 다이어트가 반복되면서였다. 캐나다에서의 어학 연수 중 급격하게 체중이 불었다. “당시엔 괜찮았어요. 살이 많이 쪘는데도 주위를 둘러보면 제가 제일 날씬했거든요. 한국으로 돌아오면 빠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섭식장애를 15년간 앓아온김여운 대표는 ”비건 로푸드를 만나며 먹는 즐거움과 음식을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무조건 굶기 시작했다”고 김 대표는 떠올렸다. 두유 한 잔, 요거트 하나가 하루 식단의 전부였다. 놀라운 속도로 살이 빠졌다. 건강한 방법은 아니었다.

“식욕은 본능이기 때문에 반드시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시기가 와요. 참고 참았던 식욕이 폭발하는 시기가 오면 2~3일씩 방에 쳐박혀 폭식을 했어요.” 아이스크림, 빵, 초콜릿. 먹어야 한다는 노력 없이도 ‘꿀떡꿀떡’ 넘어가는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눌렀던 욕구가 채워지고 나면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해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했나 싶은 거예요. 그럼 다시 절식기로 접어들어요.” 요거트 하나, 두유 하나. 그러다 다시 폭식. “몇 년 동안 반복했어요. 폭식을 한 뒤 절식을 하면 살은 빠지지만, 요요현상때문에 ‘계단식 논밭’처럼 점점 살이 쪘어요.” 이 과정 동안 15㎏이나 늘었다. “결국 몸이 망가지더라고요.”

섭식장애를 앓는 긴 시간,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섭식장애는… (이걸 앓는 사람들은) 굉장히 수치스러운 증상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은 삼시세끼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데 나는 왜 못 먹지? 나는 왜 이렇지? 이런 생각들이 저를 굉장히 수치스럽게 했어요.” 타인에겐 털어놓기 힘든 ‘질병’이었다고 한다.

섭식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양방과 한방을 병행했다. 약물, 상담, 미술 치료를 받았다. “잠깐 호전됐다가도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어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어요. 너무 오래 앓다 보니 도를 닦듯이 깨달음이 오는 거예요. 섭식 방법을 바꿔보자는 생각에 찾게 된 게 생식이었어요.” 그 곳은 ‘막다른 골목’이었다고 한다. 

비로소 채식(비건과 로푸드가 함께 하는 소소한 채식 이야기)의 3월 모임을 위해 음식을 준비 중인 김여운 대표

▶ 음식과 화해하기…“두려움 없이 먹을 수 있는 기쁨”=‘폭식증’을 치료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생식은 암 환자를 비롯해 건강에 좋다고 상식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처음부터 치료 방법으로 접근한 건 아니었어요. 하다 하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거라도 해보자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 때가 2014년이었다.

현미(도정하지 않은 곡물)와 생견과, 생야채, 과일만 먹는 생활이 시작됐다. 생식을 시작하면서도 원칙은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증이 도진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 시절 김 대표는 한 끼는 생식, 한 끼는 일반식을 먹으며 생활했다. 6개월 ~1년이 지나자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생식을 하고 나니 몸이 깨끗해지더라고요. 더러운 물에 먹물이 떨어지는 것과 깨끗한 물에 먹물이 떨어지는 것은 다르잖아요. 예전에는 먹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생식 이후엔 몸이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하지만 몸이 예민해지면서 맞지 않은 음식을 먹을 경우, 살갗이 갈라지고 진물이 나는 한포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제 몸 안으로 안 좋은 것이 들어가면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몸이 반응하는 음식들은 하나 둘 제외했다. 우유, 치즈, 고기…. “채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채식을 한 건 아니었어요. 제 몸에 이상 반응이 오는 것을 제외하고 나니 남은 게 채식 식단이었어요.”

먹는 것에 제약이 생기자,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았다. “밖에 나가 먹을 수 있는 것도 없고요.” 매일 같이 ‘생쌀(현미)’만 먹는 것도 버거웠다. “저도 맛있는 걸 먹고 싶으니까요.”

그러다 알게 된 것이 로푸드였다. 로푸드는 열을 가하진 않지만, 45℃ 이하에서 조리하고, 조미도 이뤄진다. “몸에 좋은 음식이 가진 생명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게 ‘로푸드’더라고요. 너무 좋아서 배우게 됐고, 강사까지 하게 됐어요.”

비건(육류, 유제품, 어류도 섭취하지 않는 가장 엄격한 단계의 채식주의자)의 재료로 로푸드를 만들며 식단을 바꾸면서 김 대표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몸이 부쩍 건강해졌다는 걸 느낀다. 늘상 피곤하고 지쳤던 것이 ‘타고난 기질’이라 생각했으나, 식단을 바꾼 이후 활기가 넘치게 됐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였고, 먹는 즐거움과 음식을 나누는 기쁨도 알게 됐다. ‘음식과의 관계’가 달라졌다.

“섭식장애를 가진 분들은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커요. 저도 먹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었어요. 내가 이걸 먹어도 될까. 먹으면 살찔 텐데, 칼로리는 얼마지? 이런 강박관념에 시달렸어요. 그런데 내 몸에 좋은 음식, 죄책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나니 먹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이젠 고통스럽게 음식을 참지 않는다. 4년간 ‘비건 지향’의 로푸드로 식단을 바꾸니 미각 세포는 완전히 달라졌다. 현재 김 대표는 한 끼는 로푸드, 한 끼는 비건 자연식을 한다.

“아마 억지로 하는 거라면 못할 거예요. 저도 빵을 달고 살았는데, 이젠 안 먹게 돼요. 예전에 즐겨 먹던 음식이 들어가면 느끼하고, 비리고, 화학적인 맛이 느껴지니까요.”

절박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식단의 변화는 ‘삶의 방향성’도 바꿨다. 동물복지, 환경보호를 고민하는 쪽으로 생각의 전환이 찾아왔다. 음식을 대하며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나의 생존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동물이든, 지구이든지 간에요. 그게 피할 수 없는 거라면 최소한의 폭력적인 삶을 지향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린 너무나 주어진 것만 먹잖아요. 무엇을 먹든 선택할 권리는 내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선택의 과정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shee@heraldcoe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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