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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풍 맞고 자란 ‘갯방풍’…입안 가득 퍼지는 향에 빠지다
  • 2018.10.15.
- 갯방풍, ‘맛의 방주’ 국내 100번째 식재료로 등재

[리얼푸드=박준규 기자]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은 착각에 빠진다. 소비자로서 꽤 다양한 작물을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하지만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각종 과일과 채소, 곡물과 고기의 품종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거기서 거기’인 몇 가지 품종을 바꿔가며 소비할 뿐이다.
하우스에서 재배된 갯방풍. [사진=울진군청]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인간은 20세기 들어서 채소 생물종의 75%, 가축종 다양성의 33%를 잃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먹는 음식의 75%는 12종의 식량 작물, 5종의 가축이 차지한다. 이렇게 된 여러 배경 가운데, 산업화를 거치며 생산성이 좋은 몇몇 품종만 추려 대량생산한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제슬로푸드협회는 1996년부터 ‘맛의 방주’(Ark of Taste)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식재료, 음식을 찾아내 리스트를 작성하고 널리 알리는 작업이다. 생물다양성을 살리자는 목표에서다. 우리나라에선 2013년 제주푸른콩장, 앉은뱅이밀, 연산오계 등이 처음 맛의 방주에 이름을 올렸다. 
국제슬로푸드협회 홈페이지에 갯방풍이 맛의 방주 리스트에 등재된 소식이 실렸다.

최근 슬로푸드 한국협회는 국내 100번째 맛의 방주 식재료 등재 소식을 알렸다. 경북 울진군을 비롯해 국내 곳곳의 바닷가에서 자라는 ‘갯방풍’(해방풍)이다. 지난 11일엔 서울 종로구 상생상회에서 국내 100번째 맛의 방주 등재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갯방풍? 식방풍?
갯방풍은 우리나라 전역의 바닷가 모래밭에서 자생하던 식물이다. 흔히 방풍 나물이라고 부르는 식방풍(갯기름나름)과는 품종이 다르다. 식방풍은 보통 땅 위로 60~100㎝ 정도로 자라지만 갯방풍은 바람이 강한 해안에서 크는 까닭에 키가 커봐야 20㎝에 그친다. 대신 땅 밑으로 뿌리를 1m까지 깊게 뻗는 게 특징이다.

한방에서는 일찍이 갯방풍의 약성에 주목해서, 예로부터 뿌리는 약재로 활용했다. 주로 고혈압, 뇌졸중, 해열, 진통, 신경통을 다스리는 용도였다. 김원일 슬로푸드문화원 원장은 “농가에선 갯방풍을 3년 길러서 뿌리를 캐고 이걸 따로 말려뒀다가 약재로 내다 팔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열린 맛의 방주 등재 기념식 참석자들에게 제공된 도시락. 갯방풍을 레시피에 활용한 메뉴들이 담겼다. [사진=슬로푸드협회]

잎은 식재료로 쓴다. 잎을 씹으면 식감이 단단하고 질기다는 인상을 받는데, 진한 향도 입안에 금세 퍼진다. 전체적으로 살짝 쓴맛을 간직하고 있지만 계속 씹다보면 단맛도 느껴진다. 갯방풍을 맛본 이들은 “향이 인상적이다”고 입을 모은다. 강병욱 셰프는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갯방풍 지키기
환경부는 갯방풍을 ‘국외반출승인 대상생물자원’으로 지정했다. 외국으로 가져가려면 환경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만큼 보호 가치가 높다는 의미다.

갯방풍은 한때 한반도 동해와 서해안에 흔히 자생하던 식물이었다. 이런 자연산 갯방풍은 해안도로 건설, 방파제 조성 등으로 서식지를 빼앗겼다. 몸에 좋다는 게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앞다퉈 채취에 나선 것도 갯방풍 감소에 영향을 줬다.

현재는 울진군 봉산리 해안에 자생지가 남아있다. 이곳 20가구 정도가 바다 모래밭에서 자연산 갯방풍을 키운다. 울진의 다른 농가들은 하우스 시설을 마련하고 해방풍을 재배한다. 울진군을 비롯한 몇몇 바닷가 지자체들도 일찌감치 해방풍의 가치에 눈을 떴다. 충남 태안군, 강원 강릉시 등도 갯방풍을 지역 특화작물로 육성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기념식에서 셰프들이 갯방풍을 활용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사진=슬로푸드협회]

손용원 울진군농업기술센터 경제작물팀장은 “울진군에선 지난 2014년부터 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이 직접 해안을 뒤지며 갯방풍 종자를 찾거나 기존 농가에서 구매해 해방풍 연구에 매달렸다”며 “종묘장을 운영하는 등 갯방풍을 어엿한 지역산업으로 키우기 위한 기반을 닦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갯방풍을 주요 식재료로 활용한 레시피도 활발히 개발하고 있다. 울진 지역에선 갯방풍을 ‘해방풍’이라고 부른다. 이 이름을 딴 해방풍밥, 해방풍육개장, 해방풍김치, 해방풍전 등 한식에 접목한 메뉴들부터 해방풍빵, 해방풍아이스크림 같은 디저트류의 레시피가 나와 있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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