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푸드=고승희 기자] “처음엔 멋모르고 받았어요. 그 땐 얼마나 고난의 길을 가야하는 건지 몰랐죠. (웃음)”
전라도 군산에서 전통장을 만드는 옹고집 영농조합법인은 2016년 국내 장류 최초로 할랄 인증을 받았다. 싱가포르 무이스(MUIS) 인증이다.
할랄 시장은 지난 몇 년 사이 국내외 식품업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시장으로 떠올랐다.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데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선 ‘수출 다변화’를 꾀할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막을 내린 2018 코엑스푸드위크에서 만난 이기원(58) 대표 역시 “그 때는 핑크빛만 보고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 포화상태 다다른 고추장 시장…기회는 수출뿐
“사실 본질은 할랄이 아니라 판로 확장이었어요. 국내 장류 시장이 어려워졌거든요.”
몇 해 전부터 전통 장류 업계는 고민이 깊었다. 이 대표는 “장류 시장은 경기도 안 좋았지만 포화상태였다”며 “시장은 자꾸 죽고 있는데 업체는 늘어만 갔던 시기였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5~6년쯤 됐나요. 귀농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업계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농사를 막 짓기 시작한 사람들은 직접 장을 담가 먹기 시작했고요. 다른 농식품 제조업을 하는 사람도 고추장, 된장쪽으로 들어왔어요.”
게다가 마을기업 육성 정책이 생기며, 손수 만든 장류를 팔 수 있는 판로가 생기자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고 한다. 라이프스타일과 식습관의 변화로 고추장, 된장을 사먹는 사람들은 줄고 있는데 공급만 나날이 넘쳐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국내 시장이 어려워지니까 여기선 안되겠다 싶었어요. 이젠 수출밖에 살 길이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국내 시장은 새로운 분들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해외로 가자 싶었죠.”
무작정 배낭 메고 떠난 해외 시장은 벽이 높았다. 시장조사를 한다고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다. 국내에선 한국식품연구원을 통해 전통 품질 인증까지 받으며 제품의 질을 인정받았지만, 해외 시장은 냉담했다.
“짜고 냄새나고 시커멓고, 게다가 가격도 비싸잖아요. 그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낙타가 바늘 구멍을 뚫어도 이렇게 어렵진 않았을 거예요. (웃음)”
옹고집의 연구는 이 때부터 시작됐다. 이 대표는 “수출을 하겠다는 무식한 열정만 있었지 아무 것도 없었다”며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으로 관심을 가져보니 눈에 띈 한 가지는 ‘소스’ 종류는 어마어마한 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옹고집에선 지금껏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소스 시장에 처음으로 눈을 돌렸다.
“막막하더라고요. 정답은 소스인데 된장, 고추장을 어떻게 바꿀까 싶었어요. 옆으로 갈 길이 있을까 싶었죠. 그렇다고 시중에 나와있는 소스들처럼 첨가물을 잔뜩 넣어 만들고 싶진 않았고요.”
특히나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된장의 변형은 쉽지 않았다. 된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를 만들기 위해 떠오른 것 중 하나는 ‘강된장’이었지만, 이 대표는 이 역시 한국인의 입맛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제품이라 판단했다. 이 대표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된장은 포기하고, 고추장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미국은 바비큐의 나라잖아요. 바비큐 소스의 종류도 참 않아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살았는데, 25년 전쯤 바베큐 소스를 처음 먹어봤어요. 니 맛도 내 맛도 아닌게 아주 시금털털하더라고요. (웃음) 거기에 간장, 고추장 막 섞어서 먹었더니 아주 맛이 좋았었어요,”
25년 전의 기억을 더듬은 것이 옹고집표 ‘바비큐 소스’의 시작이 됐다. 기존 간장 베이스의 한국식 불고기나 갈비 양념 시장은 진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이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죠.”
고추장의 감칠맛과 어간장의 매력을 더해 만든 ‘바비큐 핫소스’의 현지 반응은 좋았다.관능 테스트를 진행한 현지 사람들은 너나 없이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웠다. “칩에 찍어먹더라고요. 이들에겐 고추장도 디핑 소스가 될 수 있고, 뭐든지 곁들여 먹을 수 있다는 걸 배웠죠.”
■ 해외 시장이 인정하는 인증 ‘할랄’
상품은 태어났지만 수출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장이라는 것도, 해썹(HACCP) 인증을 받았다는 것도 미국에선 무용지물이었다.
“FDA 인증이 있냐, USDA 인증이 있냐, 유기농이냐… 뭘 보여줄 수 있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인정하는 인증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뭣도 모르면서 약올라서 받은 거예요. (웃음)”
할랄 인증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다만 옹고집 영농조합법인의 경우 전통품질업체의 인증을 받은 데다, 사업장 내부는 해썹 인증을 지키고 있는 ‘클린 사업장’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일단 고기가 들어가지 않잖아요. 원재료가 허용된 것들이라 식품의 재료에 대한 문제는 없었어요. 제조시설과 제조 과정에 있어서도 할랄로 가기 위한 기반을 갖춘 상태였죠. 해썹 인증을 준수해온 것이 기본적인 설비 자격을 갖췄다고 판단하더라고요.”
난관은 발효식품의 특성 때문에 등장했다. 할랄 식품은 알코올을 허용하지 않는데, 고추장은 자연 발효 과정에서 효모균이 성장하며 알코올이 만들어진다. “정초에 장을 담그면 효모균이 여름에 정점을 이뤘다가 10~11월이 되면 잠잠해져요. 이 시기쯤 인증을 받았어요.” 거기에 발효를 억제할 수 있으면서도, 할랄에서 허용되는 조치를 취해 어렵사리 인증을 받게 됐다.
옹고집 영농조합법인은 총 8개의 품목에 할랄 인증을 받았다. 고추장, 어간장, 청국장, 된장은 싱가포르 무이스 인증을 받았고, 올해엔 떡볶이장, 만능간장, 볶음춘장, 고추장에 국내 할랄 인증(KMF)을 추가로 받았다.
“동남아시아가 아닌 미국이나 중국 수출을 할 때 할랄 인증이 있다고 특별한 우대는 없어요. 할랄 인증이 있어 우리 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은 할랄인도 아니니까요. 다만 너네 할랄도 있냐며 감탄은 하죠. 게다가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무슬림을 소비자로 확보할 수 있고요.”
오랜 시간을 들여 할랄 인증을 받았지만 지금 당장의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간 할랄 인증은 물론 신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가 상당했다. 사실 국내외 할랄 인증을 받으면서 들어간 비용도 만만치 않다. 국가 지원이 나온다지만 국내 인증과 달리 해외 인증은 55~60% 수준의 지원이라서 중소업체에겐 부담이 상당하다,
“고통의 크기를 미리 알았다면 선뜻 받으려 하진 않았을 수도 있어요. (웃음) 하지만 분명한 건 동남아시아 시장이 커지고 있고, 국내 시장으로는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판로가 된다는 점이에요. 지금도 다른 업체들이 조언을 구하면 국내 할랄 인증을 받으라고 해요. 아이템마다 다르기에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 없지만,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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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군산에서 전통장을 만드는 옹고집 영농조합법인은 2016년 국내 장류 최초로 할랄 인증을 받았다. 싱가포르 무이스(MUIS) 인증이다.
할랄 시장은 지난 몇 년 사이 국내외 식품업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시장으로 떠올랐다.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닌 데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선 ‘수출 다변화’를 꾀할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막을 내린 2018 코엑스푸드위크에서 만난 이기원(58) 대표 역시 “그 때는 핑크빛만 보고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전통장을 생산하는 이기원 옹고집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국내 시장의 어려움으로 해외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할랄 인증을 받았다”고 말했다. |
■ 포화상태 다다른 고추장 시장…기회는 수출뿐
“사실 본질은 할랄이 아니라 판로 확장이었어요. 국내 장류 시장이 어려워졌거든요.”
몇 해 전부터 전통 장류 업계는 고민이 깊었다. 이 대표는 “장류 시장은 경기도 안 좋았지만 포화상태였다”며 “시장은 자꾸 죽고 있는데 업체는 늘어만 갔던 시기였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5~6년쯤 됐나요. 귀농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업계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농사를 막 짓기 시작한 사람들은 직접 장을 담가 먹기 시작했고요. 다른 농식품 제조업을 하는 사람도 고추장, 된장쪽으로 들어왔어요.”
게다가 마을기업 육성 정책이 생기며, 손수 만든 장류를 팔 수 있는 판로가 생기자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고 한다. 라이프스타일과 식습관의 변화로 고추장, 된장을 사먹는 사람들은 줄고 있는데 공급만 나날이 넘쳐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국내 시장이 어려워지니까 여기선 안되겠다 싶었어요. 이젠 수출밖에 살 길이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국내 시장은 새로운 분들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해외로 가자 싶었죠.”
무작정 배낭 메고 떠난 해외 시장은 벽이 높았다. 시장조사를 한다고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반응은 좋지 않았다. 국내에선 한국식품연구원을 통해 전통 품질 인증까지 받으며 제품의 질을 인정받았지만, 해외 시장은 냉담했다.
“짜고 냄새나고 시커멓고, 게다가 가격도 비싸잖아요. 그 사람들이 먹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낙타가 바늘 구멍을 뚫어도 이렇게 어렵진 않았을 거예요. (웃음)”
옹고집의 연구는 이 때부터 시작됐다. 이 대표는 “수출을 하겠다는 무식한 열정만 있었지 아무 것도 없었다”며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으로 관심을 가져보니 눈에 띈 한 가지는 ‘소스’ 종류는 어마어마한 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옹고집에선 지금껏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소스 시장에 처음으로 눈을 돌렸다.
“막막하더라고요. 정답은 소스인데 된장, 고추장을 어떻게 바꿀까 싶었어요. 옆으로 갈 길이 있을까 싶었죠. 그렇다고 시중에 나와있는 소스들처럼 첨가물을 잔뜩 넣어 만들고 싶진 않았고요.”
특히나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된장의 변형은 쉽지 않았다. 된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를 만들기 위해 떠오른 것 중 하나는 ‘강된장’이었지만, 이 대표는 이 역시 한국인의 입맛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제품이라 판단했다. 이 대표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된장은 포기하고, 고추장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미국은 바비큐의 나라잖아요. 바비큐 소스의 종류도 참 않아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살았는데, 25년 전쯤 바베큐 소스를 처음 먹어봤어요. 니 맛도 내 맛도 아닌게 아주 시금털털하더라고요. (웃음) 거기에 간장, 고추장 막 섞어서 먹었더니 아주 맛이 좋았었어요,”
25년 전의 기억을 더듬은 것이 옹고집표 ‘바비큐 소스’의 시작이 됐다. 기존 간장 베이스의 한국식 불고기나 갈비 양념 시장은 진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이라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죠.”
고추장의 감칠맛과 어간장의 매력을 더해 만든 ‘바비큐 핫소스’의 현지 반응은 좋았다.관능 테스트를 진행한 현지 사람들은 너나 없이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웠다. “칩에 찍어먹더라고요. 이들에겐 고추장도 디핑 소스가 될 수 있고, 뭐든지 곁들여 먹을 수 있다는 걸 배웠죠.”
옹고집 영농조합법인은 국내 장류 최초로 지난 2016년 할랄 인증을 받았다. |
■ 해외 시장이 인정하는 인증 ‘할랄’
상품은 태어났지만 수출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장이라는 것도, 해썹(HACCP) 인증을 받았다는 것도 미국에선 무용지물이었다.
“FDA 인증이 있냐, USDA 인증이 있냐, 유기농이냐… 뭘 보여줄 수 있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인정하는 인증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뭣도 모르면서 약올라서 받은 거예요. (웃음)”
할랄 인증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다만 옹고집 영농조합법인의 경우 전통품질업체의 인증을 받은 데다, 사업장 내부는 해썹 인증을 지키고 있는 ‘클린 사업장’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일단 고기가 들어가지 않잖아요. 원재료가 허용된 것들이라 식품의 재료에 대한 문제는 없었어요. 제조시설과 제조 과정에 있어서도 할랄로 가기 위한 기반을 갖춘 상태였죠. 해썹 인증을 준수해온 것이 기본적인 설비 자격을 갖췄다고 판단하더라고요.”
난관은 발효식품의 특성 때문에 등장했다. 할랄 식품은 알코올을 허용하지 않는데, 고추장은 자연 발효 과정에서 효모균이 성장하며 알코올이 만들어진다. “정초에 장을 담그면 효모균이 여름에 정점을 이뤘다가 10~11월이 되면 잠잠해져요. 이 시기쯤 인증을 받았어요.” 거기에 발효를 억제할 수 있으면서도, 할랄에서 허용되는 조치를 취해 어렵사리 인증을 받게 됐다.
옹고집 영농조합법인은 총 8개의 품목에 할랄 인증을 받았다. 고추장, 어간장, 청국장, 된장은 싱가포르 무이스 인증을 받았고, 올해엔 떡볶이장, 만능간장, 볶음춘장, 고추장에 국내 할랄 인증(KMF)을 추가로 받았다.
“동남아시아가 아닌 미국이나 중국 수출을 할 때 할랄 인증이 있다고 특별한 우대는 없어요. 할랄 인증이 있어 우리 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은 할랄인도 아니니까요. 다만 너네 할랄도 있냐며 감탄은 하죠. 게다가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무슬림을 소비자로 확보할 수 있고요.”
오랜 시간을 들여 할랄 인증을 받았지만 지금 당장의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간 할랄 인증은 물론 신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가 상당했다. 사실 국내외 할랄 인증을 받으면서 들어간 비용도 만만치 않다. 국가 지원이 나온다지만 국내 인증과 달리 해외 인증은 55~60% 수준의 지원이라서 중소업체에겐 부담이 상당하다,
“고통의 크기를 미리 알았다면 선뜻 받으려 하진 않았을 수도 있어요. (웃음) 하지만 분명한 건 동남아시아 시장이 커지고 있고, 국내 시장으로는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판로가 된다는 점이에요. 지금도 다른 업체들이 조언을 구하면 국내 할랄 인증을 받으라고 해요. 아이템마다 다르기에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 없지만,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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