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푸드=고승희 기자]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지나쳐버리기 쉬운 인적 드문 골목 입구. 해방촌 중턱에 작은 사찰 하나가 생겼다. 이곳의 주지스님은 록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보컬 전범선(28) 씨다.
해방촌 사찰은 ‘파격’이 넘친다. 노란 불빛의 석등 옆으로 나있는 유리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계다. 팔도강산 자리한 전통 사찰을 떠올린다면 오산. 셰프 안백린(26) 씨는 이 곳을 “비욘드 사찰(사찰 그 이상의)”이라고 부른다. 골목 안의 사찰에선 청담동 라운지 클럽에서나 들을 법한 테크노 음악이 낮게 깔린다. 디자인 전략가인 박연(28) 씨는 “반복적인 패턴이 목탁 소리와 비슷해서 마음의 안정을 준다”며 BGM을 선정한 이유를 말했다. 전범선 씨는“말이 없고,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테크노는 혼자 명상하기 좋은 다분히 불교적인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10평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엔 8개의 개인용 식탁과 목탁 하나가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이 해방촌 사찰인 ‘소식’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소식’을 가꾸는 사람들은 전범선 씨를 비롯해 채식 셰프 안백린(26), 디자인 전략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박연 씨다. 젊은 철학가를 자처한 세 사람이 의기투합한 ‘소식’은 서울 해방촌의 ‘비건 로드’에 자리한 ‘사찰음식점’이다. 지난 7일 저녁, 세 사람을 만나 ‘소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 20대 젊은 채식인들, 왜 사찰음식이었나?
세 사람에겐 공통분모가 있다. 채식주의자, 오랜 외국 생활, 문화(음악, 미술, 요리)와 철학에 애정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젊은 채식인이 늘었다. 세계적인 흐름과 함께 국내의 밀레니얼 세대에게 채식은 자신을 드러내는 가치관이자 신념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20대 후반의 젊은 세대가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국내에서도 20대를 겨냥한 채식당은 서구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 안타까움이 이들에겐 추동 엔진이 됐다.
생선을 먹는 채식주의자인 박연 씨는 “뉴욕과 베를린에서 학교를 마친 뒤 지난해 한국에 돌아와보니 채식당도 많지 않을 뿐더러 주목받는 비건 카페는 미국에서 다니던 데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찰음식은 비건(Vegan, 완전한 채식주의자)인 데다, 2000년간 근본을 지켜온 멋진 문화이자 철학이라고 생각해요. 제 나이 또래 중 비건 음식을 먹고 소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왜 한국적인 것을 들여다보지 않고, 서구화된 카페만 찾는지 안타까웠어요. 진짜 뿌리깊고, 가치있는 것들을 제 또래 밀레니얼들이 조금 더 깊이 알고 다시 한 번 지켜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제가 봤을 때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사찰음식을 하게 됐어요.” (박연)
비건인 전범선 씨도 마찬가지였다. 록밴드의 멤버이자, 두루미 출판사의 대표이며, 동물권 단체(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자신의 모든 발걸음에 하나의 목적을 담고 있다. ‘역사적 단절의 회복’이 바로 그것이다.
“동물권 입장에서 채식을 선호하게 됐고, 학교에선 역사를 공부했어요. 밴드나 출판사, 모든 활동을 해오며 이 땅에서의 역사적 단절이 가장 창피했어요. 음악을 하든, 출판을 하든, 음식을 하든 역사적 연속성을 복구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화두예요. 사찰음식이 아니더라도, 근대화 이전 한국은 채식 위주의 식단이었고, 단순히 향토음식보다 불교음식에서 가지고 있는 동물권 철학이 우리와 맞닿는 부분이 컸어요.”(전범선)
젊은 채식인 단체인 너티즈를 통해 ‘비건 파티’ 등을 기획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온 안백린 씨는 사찰음식의 정신에 매료됐다고 한다.
“사찰음식이 특별한 것은 농작물을 대량 생산이 아닌 소농으로 키워서 먹고, 자연 순환을 생각해 쓰레기도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점이에요. 요리를 할 때에도 식재료 하나 하나와 교류하고 존중하면서 다룬다는 점이 굉장히 좋았어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점을 담고 싶어 사찰음식을 하고 싶었어요.” (안백린)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전범선 씨는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동물해방의 발상지는 영국이지만, 그들의 영감은 늘 동양 철학이었다”며 “이제야 우리 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 거꾸로 찾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건이라고 하면서, 레스토랑에 가서 아보카도나 콩고기 버거를 먹어요.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사찰음식이라는 이렇게 멋있는 문화가 우리한테 있더라고요. 서양인보다 우리가 더 멋있는 걸 할 수 있는 거죠.” (전범선)
■ 소식, 사찰음식과 불교 철학을 재창조하는 공간
소식이 담은 가치에는 불교와 세 사람의 철학이 더해졌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박연 씨가 지었다. “여러 의미를 담고 있지만, 가장 처음 생각했던 것은 세 가지 한자였어요. 적을 소, 나물 소, 웃을 소예요.”
‘모든 음식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웃을 소ㆍ笑), ‘과식을 삼가고 최소한의 양만 섭취하며’(적을 소ㆍ少), ‘가능하면 육식을 삼가고 채식을 한다’(나물 소ㆍ蔬)는 것이다.
“소식은 고기 없는 밥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소복이 상중에 있는 사람들이 입는 마음을 비우는 옷이라면, 소식은 그런 상황이나 수행하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인데 이제는 잊혀진 말이 됐죠. 지금은 ‘비건’이라는 말이 더 유명해졌지만, 사실 소식은 비건이라고 써있는 것과 같은 거예요.(웃음)”(전범선)
사찰음식점이라지만 소식은 기존의 사찰음식점과는 다르다. 이곳의 항해사는 안백린 셰프. 전범선, 박연 대표가 ‘소식’의 경영과 공간의 재창조, 브랜드 마케팅에 주력한다면 소식의 주인공인 음식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안백린 셰프의 몫이다. 젊은 셰프의 음식은 기존 사찰음식을 재해석한다.
“사찰음식이라고 기존의 조계종이나 선종을 따르기보다는 사찰을 만들면 거기서 먹는 음식은 다 사찰음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서양식 퓨전이라 할지라도, 공간을 사찰이라 부를 수 있고, 그 안에 철학이 담겨있다면요. 그래서 이 곳에선 술을 마셔도 돼요. 하지만 동물을 해치지 않고, 자연의 순환과 원산지부터 식탁에 오르는 과정까지의 고민을 담아내죠.”(전범선)
식재료 하나를 고를 때에도 세 사람이 추구하는 소식의 철학을 담는다. 장단콩, 호랑이콩과 같은 로컬 식재료를 사용하고, 지속가능한 식탁을 만들기 위해 무농약 식재료를 쓴다. 백미나 수입쌀보다는 흑보리, 청차조, 메일과 같은 국내산 고대곡물로 밥을 짓는다. 가격은 비싸지만 GM식품을 피하기 위해 해바라기씨유를 고집하는 것도 소식만의 원칙이다.
“소식에서는 시간을 요리한다고 말해요. 사찰음식이 좋았던 것은 오랜 시간을 들여 요리한 발효 음식이 많기 때문이에요. 2년, 3년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였기에 깊은 맛이 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식의 음식들도 식재료 하나 하나 맛을 살리고, 재해석하기 위해 오랜 시간 복잡한 과정을 거쳐 요리하고 있어요.” (안백린)
목탁 소리가 울리면, 홀의 매니저가 주문을 받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음식은 가로, 세로 32cm의 작은 상 위에 놓인다.
“상이 작나요? 우리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먹는 것에 익숙해져있고, 한식은 나눠먹는 문화가 있지만 그건 20세기 이후 만들어진 거예요. 양반들은 원래 독상을 받았고요. 사실 스님들이 상다리가 휘어지게 먹진 않잖아요.” (전범선)
“그게 사찰음식과 한식의 차이인 것 같아요. 조금 안타까운 것은, 한식은 ‘정’이라고 하면서 무한리필을 하고 반찬도 많이 줘요. 그래서 한식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남는음식이 너무 많아요, 퍼주는 것의 한계와 단점이 있어요. 양이 적어도 한 입 한 입에 집중하면서 남기지 않고 먹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박연)
‘핫’하지만 외딴 곳에 자리한 위치 덕에, 독특한 분위기 덕에, 사람들은 지나가다 들리고, ‘채식당’을 검색해 찾아오기도 한다. ‘소식’이라는 공간은 알게 모르게 찾아온 누구에게나 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각자가 원하는 만큼의 자유를 맛 보고, 얻을 수 있는 만큼의 해방을 찾아 돌아간다.
“사찰을 열었다고 하니 저를 찾아오는 교인들이 생기더라고요. 어떤 면에서건 소외된 사람들이, 나름의 번뇌를 가지고 와요. 소식이라는 공간은 수행과 소통의 공간으로 이 땅에서 번뇌를 가진 남녀노소 동물에게 편견과 차별 없이 열려 있어요. 이곳에서 음식을 나누고, 서로 소통하면서 치유와 연대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찰의 주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거예요.” (전범선)
shee@heraldcorp.com
해방촌 사찰은 ‘파격’이 넘친다. 노란 불빛의 석등 옆으로 나있는 유리 문을 열면 전혀 다른 세계다. 팔도강산 자리한 전통 사찰을 떠올린다면 오산. 셰프 안백린(26) 씨는 이 곳을 “비욘드 사찰(사찰 그 이상의)”이라고 부른다. 골목 안의 사찰에선 청담동 라운지 클럽에서나 들을 법한 테크노 음악이 낮게 깔린다. 디자인 전략가인 박연(28) 씨는 “반복적인 패턴이 목탁 소리와 비슷해서 마음의 안정을 준다”며 BGM을 선정한 이유를 말했다. 전범선 씨는“말이 없고,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테크노는 혼자 명상하기 좋은 다분히 불교적인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10평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엔 8개의 개인용 식탁과 목탁 하나가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이 해방촌 사찰인 ‘소식’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소식’을 가꾸는 사람들은 전범선 씨를 비롯해 채식 셰프 안백린(26), 디자인 전략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박연 씨다. 젊은 철학가를 자처한 세 사람이 의기투합한 ‘소식’은 서울 해방촌의 ‘비건 로드’에 자리한 ‘사찰음식점’이다. 지난 7일 저녁, 세 사람을 만나 ‘소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해방촌 중턱에 위치한 소식은 록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의 전범선(왼쪽부터), 셰프 안백린, 디자인 전략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박연이 문을 연 사찰음식점이다] |
■ 20대 젊은 채식인들, 왜 사찰음식이었나?
세 사람에겐 공통분모가 있다. 채식주의자, 오랜 외국 생활, 문화(음악, 미술, 요리)와 철학에 애정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젊은 채식인이 늘었다. 세계적인 흐름과 함께 국내의 밀레니얼 세대에게 채식은 자신을 드러내는 가치관이자 신념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20대 후반의 젊은 세대가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국내에서도 20대를 겨냥한 채식당은 서구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 안타까움이 이들에겐 추동 엔진이 됐다.
생선을 먹는 채식주의자인 박연 씨는 “뉴욕과 베를린에서 학교를 마친 뒤 지난해 한국에 돌아와보니 채식당도 많지 않을 뿐더러 주목받는 비건 카페는 미국에서 다니던 데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이기도 한 전범선 씨는 “근대화 이전 한국은 채식 위주의 식단이었고, 단순히 향토음식보다 불교음식에서 가지고 있는 동물권 철학이 우리와 맞닿은 부분이 커 사찰음식점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전범선 씨 제공] |
“사찰음식은 비건(Vegan, 완전한 채식주의자)인 데다, 2000년간 근본을 지켜온 멋진 문화이자 철학이라고 생각해요. 제 나이 또래 중 비건 음식을 먹고 소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왜 한국적인 것을 들여다보지 않고, 서구화된 카페만 찾는지 안타까웠어요. 진짜 뿌리깊고, 가치있는 것들을 제 또래 밀레니얼들이 조금 더 깊이 알고 다시 한 번 지켜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제가 봤을 때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사찰음식을 하게 됐어요.” (박연)
비건인 전범선 씨도 마찬가지였다. 록밴드의 멤버이자, 두루미 출판사의 대표이며, 동물권 단체(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자신의 모든 발걸음에 하나의 목적을 담고 있다. ‘역사적 단절의 회복’이 바로 그것이다.
“동물권 입장에서 채식을 선호하게 됐고, 학교에선 역사를 공부했어요. 밴드나 출판사, 모든 활동을 해오며 이 땅에서의 역사적 단절이 가장 창피했어요. 음악을 하든, 출판을 하든, 음식을 하든 역사적 연속성을 복구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화두예요. 사찰음식이 아니더라도, 근대화 이전 한국은 채식 위주의 식단이었고, 단순히 향토음식보다 불교음식에서 가지고 있는 동물권 철학이 우리와 맞닿는 부분이 컸어요.”(전범선)
젊은 채식인 단체인 너티즈를 통해 ‘비건 파티’ 등을 기획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온 안백린 씨는 사찰음식의 정신에 매료됐다고 한다.
[사진= 안백린 씨는 ‘소식’의 총괄 셰프로 사찰음식을 재해석한 ‘밀레니얼 템플 푸드’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안백린 씨 제공] |
“사찰음식이 특별한 것은 농작물을 대량 생산이 아닌 소농으로 키워서 먹고, 자연 순환을 생각해 쓰레기도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점이에요. 요리를 할 때에도 식재료 하나 하나와 교류하고 존중하면서 다룬다는 점이 굉장히 좋았어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점을 담고 싶어 사찰음식을 하고 싶었어요.” (안백린)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전범선 씨는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동물해방의 발상지는 영국이지만, 그들의 영감은 늘 동양 철학이었다”며 “이제야 우리 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 거꾸로 찾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건이라고 하면서, 레스토랑에 가서 아보카도나 콩고기 버거를 먹어요.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사찰음식이라는 이렇게 멋있는 문화가 우리한테 있더라고요. 서양인보다 우리가 더 멋있는 걸 할 수 있는 거죠.” (전범선)
■ 소식, 사찰음식과 불교 철학을 재창조하는 공간
소식이 담은 가치에는 불교와 세 사람의 철학이 더해졌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박연 씨가 지었다. “여러 의미를 담고 있지만, 가장 처음 생각했던 것은 세 가지 한자였어요. 적을 소, 나물 소, 웃을 소예요.”
‘모든 음식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웃을 소ㆍ笑), ‘과식을 삼가고 최소한의 양만 섭취하며’(적을 소ㆍ少), ‘가능하면 육식을 삼가고 채식을 한다’(나물 소ㆍ蔬)는 것이다.
“소식은 고기 없는 밥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소복이 상중에 있는 사람들이 입는 마음을 비우는 옷이라면, 소식은 그런 상황이나 수행하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인데 이제는 잊혀진 말이 됐죠. 지금은 ‘비건’이라는 말이 더 유명해졌지만, 사실 소식은 비건이라고 써있는 것과 같은 거예요.(웃음)”(전범선)
사찰음식점이라지만 소식은 기존의 사찰음식점과는 다르다. 이곳의 항해사는 안백린 셰프. 전범선, 박연 대표가 ‘소식’의 경영과 공간의 재창조, 브랜드 마케팅에 주력한다면 소식의 주인공인 음식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안백린 셰프의 몫이다. 젊은 셰프의 음식은 기존 사찰음식을 재해석한다.
“사찰음식이라고 기존의 조계종이나 선종을 따르기보다는 사찰을 만들면 거기서 먹는 음식은 다 사찰음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서양식 퓨전이라 할지라도, 공간을 사찰이라 부를 수 있고, 그 안에 철학이 담겨있다면요. 그래서 이 곳에선 술을 마셔도 돼요. 하지만 동물을 해치지 않고, 자연의 순환과 원산지부터 식탁에 오르는 과정까지의 고민을 담아내죠.”(전범선)
식재료 하나를 고를 때에도 세 사람이 추구하는 소식의 철학을 담는다. 장단콩, 호랑이콩과 같은 로컬 식재료를 사용하고, 지속가능한 식탁을 만들기 위해 무농약 식재료를 쓴다. 백미나 수입쌀보다는 흑보리, 청차조, 메일과 같은 국내산 고대곡물로 밥을 짓는다. 가격은 비싸지만 GM식품을 피하기 위해 해바라기씨유를 고집하는 것도 소식만의 원칙이다.
“소식에서는 시간을 요리한다고 말해요. 사찰음식이 좋았던 것은 오랜 시간을 들여 요리한 발효 음식이 많기 때문이에요. 2년, 3년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였기에 깊은 맛이 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식의 음식들도 식재료 하나 하나 맛을 살리고, 재해석하기 위해 오랜 시간 복잡한 과정을 거쳐 요리하고 있어요.” (안백린)
목탁 소리가 울리면, 홀의 매니저가 주문을 받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음식은 가로, 세로 32cm의 작은 상 위에 놓인다.
“상이 작나요? 우리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먹는 것에 익숙해져있고, 한식은 나눠먹는 문화가 있지만 그건 20세기 이후 만들어진 거예요. 양반들은 원래 독상을 받았고요. 사실 스님들이 상다리가 휘어지게 먹진 않잖아요.” (전범선)
[사진= 박연 씨는 “사찰음식점 소식은 20대의 젊은 세대와 채식인들이 잊혀져간 사찰음식을 통해 가치있는 우리 문화를 한 번쯤 되새겨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했다”고 말했다. 사진=박연 씨 제공] |
“그게 사찰음식과 한식의 차이인 것 같아요. 조금 안타까운 것은, 한식은 ‘정’이라고 하면서 무한리필을 하고 반찬도 많이 줘요. 그래서 한식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남는음식이 너무 많아요, 퍼주는 것의 한계와 단점이 있어요. 양이 적어도 한 입 한 입에 집중하면서 남기지 않고 먹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박연)
‘핫’하지만 외딴 곳에 자리한 위치 덕에, 독특한 분위기 덕에, 사람들은 지나가다 들리고, ‘채식당’을 검색해 찾아오기도 한다. ‘소식’이라는 공간은 알게 모르게 찾아온 누구에게나 사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각자가 원하는 만큼의 자유를 맛 보고, 얻을 수 있는 만큼의 해방을 찾아 돌아간다.
“사찰을 열었다고 하니 저를 찾아오는 교인들이 생기더라고요. 어떤 면에서건 소외된 사람들이, 나름의 번뇌를 가지고 와요. 소식이라는 공간은 수행과 소통의 공간으로 이 땅에서 번뇌를 가진 남녀노소 동물에게 편견과 차별 없이 열려 있어요. 이곳에서 음식을 나누고, 서로 소통하면서 치유와 연대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찰의 주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거예요.” (전범선)
[사진=전범선 씨는 사찰음식점 소식은 “이 땅에서 번뇌를 가진 남녀노소 동물에게 편견과 차별 없이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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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