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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카를 융의 통합사고가 정치인들에게 필요해
  •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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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19의 수도권 확산,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여야의 대치와 정의연의 회계처리 의혹 등의 복잡한 나라 안 사정에 많은 사람이 지쳐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은 연일 군사적 행동의 위협을 해오고 있고, 그동안의 남북한 합의는 종잇조각이 돼버렸다. 이런 문제는 상대방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남과 북은 서로 같은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달라 쉽게 신뢰가 쌓일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이런 복잡한 사회상황에서 정신과 의사로서 유독 생각나는 사람은 카를 구스타프 융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이자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사람이다. 그는 초기 프로이트의 사상에 동의하여 제자 겸 동료로서 함께했지만, 무의식에 대한 너무나 정형화되고 기계적인 프로이드의 관점에 회의를 느껴 결국 결별하게 된다. 융은 무의식을 개인적 무의식, 집단적 무의식 등으로 보기도 하고, 콤플렉스, 아니마, 아니무스 등의 개념으로 무의식의 경계를 확장하였다.

필자는 그의 사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통합’이라고 하고 싶다. 그는 우리 개인의 정신은 의식, 무의식이 끊임없는 대립을 이루면서 그 속에서도 조화와 통합을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고 하였다. 사랑과 미움, 내향과 외향, 아름다움과 추함, 남성과 여성 등 많은 서로 대극들이 있으며 이런 대극 간의 긴장은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양극 중에서 하나만 취하고 다른 하나를 버린다면, 또는 하나를 아예 없애버리려고 한다면, 우리의 무의식은 억압된 상태로 있다가 더욱 힘을 키워 후일 의식을 사로잡게 된다고 했다. 동양의 음양 사상과도 맥이 통하는 것이다.

즉, 대극 간의 대립과 긴장은 계속해서 우리의 정신을 움직이게끔 하는 동력이자 균형을 유지하는 기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이 너무 한 방향으로 가고 있거나 마음이 양극 간 균형과 통합의 상태를 잃으면 우리의 정신은 일종의 경고를 하고, 이것이 ‘노이로제’라는 병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경고는 병의 긍정적인 측면인 것이다. 융은 인간 정신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과정들을 보며, 삶에 대한 겸손을 배우게 된다고 했다.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은 극심한 대립과 극단적인 성향, 분열과 대립, 증오와 적대감 속에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균형을 유지하기보다 다른 한쪽을 없애려는 경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융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의 정신은 결국 이런 분열과 대립을 통합으로 가게 돼 있다. 상대방을 누르면 누를수록 당장은 힘이 약해지겠지만, 억눌림을 통해 힘을 얻게 되어 미래에는 더 크게 현재의 의식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마치 풍선을 누르면 당장은 작아지지만, 그 내부의 압력은 증가돼 결국 폭발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것이 우리 마음의 작동원리이자 자연의 이치이다.

대립에서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양보가 필요하다. 융이 정신의 이러한 과정을 보고 삶의 겸손을 배웠다고 말했듯이, 우리는 미래를 위해 겸손하게 행동하고 통합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양보를 해야 한다. 그것이 대립에서 통합으로 가는 시작일 것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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