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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희 회장 타계] "보호자 노릇 3일이면 환자가 되는 현실"…병원문화 대전환의 길 만들었다
  • 2020.10.26.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사진은 1993년 삼성서울병원 건설 현장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 연합뉴스

[헤럴드경제=김태열 기자] "위궤양은 회복되지만 암은 진화한다. 초기에 잘라내지 않으면 3~5년 뒤에 온몸으로 전이되어 사람을 죽인다. 삼성은 자칫 잘못하면 암의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암은 초기에 수술하면 나을 수 있으나 3기에 들어가면 누구도 못 고친다"

“양과 질의 비중을 5대 5나 3대 7 정도로 가자는 게 아니다. 아예 0대 10으로 가자는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 사람과 경영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공장이나 라인의 생산을 중단해도 좋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신경영'을 꺼내들었다.

이러한 '신경영'의 산물은 '병원문화의 혁신'으로도 이어졌다. 삼성이 만드는 병원은 달라야한다는 명제하에 지어진 삼성의료원의 병원문화혁신 첫번째 명제는 ‘친절함’이었다. 기존의 병원문화가 의사가 환자에게 시혜를 베풀던 개념이었다면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으로 마인드를 바꾸는 것이다.

10여년의 삼성의료원 준비기간을 거쳐 거의 공사가 막바지 단계에 들어갈 무렵인 지난 1993년 삼성의료원 공사 현장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은 “3시간 대기 3분 진료 현실, 보호자 노릇 3일이면 환자가 되는 현실, 촌지라도 집어줘야 좀 어떠냐고 물어보는 현실”을 지적하며 새로운 병원 문화를 주문했다.

이런 고 이 회장의 당부는 촌지 척결을 비롯해 기다림·보호자가 없는 ‘3무(無) 경영’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국내 병원문화의 인식전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은 왜 꼭 친절해야 하는가’라고 말하는 의사들이 있는데, 지금 다른 병원이 안하는 것을 하니 오늘의 삼성이 됐음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회장으로서 가장 신경을 쓰는 데가 반도체와 병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병원에 대한 고 이 회장의 관심은 각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랜 준비기간 끝에 삼성서울병원은 마침내 1994년 서울 일원동에서 1100병상 규모의 병원을 개원했고 개원과 함께 ‘환자중심’ ‘고객만족’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환자’에 ‘고객’이란 개념을 더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인식의 전환이었다.

진료현장에서 처음으로 종이차트를 없애고 국내 병원 최초로 진료예약제를 실시했으며, 소란스럽고 어수선했던 과거 영안실의 모습을 합리적으로 개선한 새로운 병원장례문화를 도입했다. 이런 노력으로 삼성서울병원은 1990년대 초 병원계 일각에 드리워졌던 낡은 관행을 주도적으로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국내 병원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삼성의료원은 환자 서비스뿐만 아니라 병원내 선진문화 정착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개원 이듬해인 1995년엔 병원계 최초로 준법경영실을 설치하고 감사팀을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전문간호사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간호부장을 이사직으로 발령내면서 간호사의 지위도 격상시켰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국내 의료서비스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선진화를 적극 모색했다. 삼성서울병원은 개원 당시부터 첨단 IT를 활용한 업무 개선을 추진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전자처방전달 시스템인 처방전달시스템(OCS)이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투약 오류나 검사 오류를 방지해 보다 안전한 진료도 가능케 됐다. 또한 개원과 동시에 전면적으로 투자한 의학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도 환자의 대기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1000 병상 이상 대형병원이 PACS를 도입한 것은 세계 최초이기도 했다. ‘기다림과 보호자가 없는 환자중심병원’을 주문했던 고(故) 이건희 회장의 의료철학이 녹아있는 당일 수술 받고 퇴원하는 '통원수술'은 보호자들의 부담감을 덜어주고 수많은 선진 IT기술이 국내 의료기관에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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