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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부동산 블루
  • 2020.12.18.

‘블루(Blue)’는 우울감이나 슬픈 감정을 뜻하는 영어 단어다. 우울한 날을 뜻하는 ‘블루데이’, 월요병을 뜻하는 ‘먼데이 블루스’, 결혼 전 우울감을 표현하는 ‘메리지 블루’, 그리고 ‘코로나 블루’까지. ‘블루’는 우리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느끼는 우울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최근 우리를 낙담하게 하는 것은 바로 ‘부동산 블루’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전·월세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부동산으로 인해 나타나는 우울과 불안, 초조 등의 뜻을 담고 있다.

인간의 뇌에는 보상 회로가 존재한다. 이 회로는 자극에 의해 도파민이 분비돼 즐거움이나 쾌락을 느끼는 부위다. 적당한 보상은 행복감을 주며, 이 경험은 다시 보상을 주는 행동을 하게끔 한다. 그러나 지속적 노력에도 보상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아 즐거움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이 돌아오지 않으니, 즐거울 리 없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젊은 세대들은 우울을 넘어서 낙담, 절망으로 접어들고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고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번아웃(burn-out) 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이 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어’라는 패배감, ‘열심히 해도 뭐 달라질 것이 있나’라는 냉소적 태도와 더불어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허무감에 빠지게 된다. 생명체를 비롯한 모든 시스템은 항상 평형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정적 상태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 외부의 새로운 자극이 있으면 시스템은 그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 정상이다. 투기세력 때문이든, 학군이 좋든, 아니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가 좋든 수요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필요하다는 것이니 그 수요에 맞춰 시스템이 작동하면 된다.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새로운 평형 상태를 이루게 된다. 이것을 외부의 힘으로 원하는 데로 끌고 가려고 하면 시스템은 저항하기 마련이고, 결국은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집값을 잡기 위해 24번의 정책을 발표했지만 그때마다 집값이 더 올랐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부동산시장을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그 가격은 더 올라가고 있다. 부동산에 문외한인 필자가 볼 때에도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규제 일변도이고 임기응변이다.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볼 것이 아닌 듯하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것’이라고 한 신임 국토부 장관 후보자의 철학이 맞다면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1가구 1주택에 대한 세금 인하, 주택 수요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주택 공급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아예 미국 뉴욕 맨해튼처럼 서울 강남에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 멋진 스카이라인과 더불어 주택 공급을 꾀하는 것은 어떨까?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미시적인 정책을 펼칠 바에야 그냥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안 그래도 코로나 3차 대유행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이 ’부동산 블루까지 겪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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