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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
  • 2022.12.09.

강박적 성격의 특징은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행동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장점이 있지만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해결하는 데 급급하고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서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을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에 비유한다.

업무특성상 작은 것을 꼼꼼하게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들도 있지만 다양한 요인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는 국가정책 수립이나 사회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강박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큰 그림을 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이태원 참사 이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위험한 장소에 대한 경계와 대처가 활발하다. 경기도 일부 광역버스는 출퇴근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승객이 가득 찬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에 입석을 아예 없애 버렸는데 전에는 자리가 없더라도 서서 타고 갈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자리가 없으면 버스를 아예 탈 수가 없어졌다. 시간 맞추는 것이 중요한 출퇴근시간에 사람들이 무작정 순서대로 기다렸다가 자리가 있는 버스를 겨우 타게 되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임이 분명하지만 새롭게 파생된 부작용들을 고려한다면 결국에는 버스의 수를 늘려서 자주 운행을 해야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같은 관점에서 지하철 역시 마찬가지다. 출퇴근시간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하철 수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출퇴근길 대중교통 혼잡 문제는 단순히 혼잡 그 자체만을 막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되며, 전체적인 운송 시스템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점검하고 해결책을 강구해나가야 하는 종류의 문제인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몇 년 전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장기간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를 지역사회 내 재활을 통해 사회에 복귀하도록 하고, 동시에 환자의 인권을 강조해 강제 입원을 엄격히 제한했다. 자·타해 위험성이 있는 환자들과 같이 입원이 필요한 중증 환자들에게만 입원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되, 나머지 환자는 빠르게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했다. 이 법이 의도한 효과를 가져오려면 지역사회 내 환자의 재활이나 적응을 도와주는 시스템이 선행적으로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러한 전제조건들이 거의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재활을 위해 지역사회로 나간 환자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병원에 다시 입원하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법안을 만드는 데에 급급해 이로 인해 파생될 문제나 유기적으로 연결된 전제조건들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강제 입원을 일률적으로 막기 보다는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재활의 문제점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분석해 해결해야 했어야 한다.

이처럼 사회의 많은 문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국가정책을 만들거나 법을 제정할 때도 강박적 성향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며, 큰 줄기를 먼저 파악하고 서로 얽혀 있는 관계를 이해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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