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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급식 건강한가]①무법천지 급식…뭐가 문제일까?
  • 2016.11.21.
[헤럴드경제=고승희ㆍ박혜림 기자] 연간 5조 6000억원, 매일 600만명의 학생들이 전국 1만2000여 학교에서 한 끼를 해결한다. 1990년대 초반 확대되기 시작한 학교급식은 어느덧 20여년의 역사를 쌓았다.

지난 20년 간 급식 문화도 변화를 거듭했다. 학생들의 입맛에 맞춰 식단은 진화하고 있다. “미래의 주역인 성장기 학생들의 먹거리에 안전상 허점이나 비리의 소지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교육청의 인식도 높아졌다. 정성이 들어간 ‘엄마표 도시락’을 싸주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도 자녀건강과 직결되는 학교급식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부실급식’이나 ‘급식비리’ 사례들이 등장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각종 급식 비리에선 개선해야 할 문제점도 지적된다. 리얼푸드는 600만 학생들의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학교급식의 실태를 짚어보고, 건강한 급식을 제공하는 ‘착한 학교급식’ 사례를 취재해 개선방향을 모색해봤다. 

▶실태=학교급식에 ‘비리 백화점’이라는 ‘주홍글씨’가 찍혔다. 식재료의 생산ㆍ유통부터 소비에 이르기까지 학교급식의 ‘총체적 부실’이 목격됐다. ‘맛 없었던’ 불량급식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올 여름 정부가 발표한 ‘학교급식 실태점검 결과 및 개선방안’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학교급식 식재료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점검한 결과 총 677건의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

생산 유통 과정에서 전국 식재료 생산농가와 가공, 유통업체 2415개 중 129개 업체, 202건의 위반사항이 나왔다. 식재료 위생관리(68건), 유통기한 경과 등 품질 기준 위반(118건), 입찰담합 등 식재료 유통질서 문란(16건)이 문제가 됐다. 친환경 농산물이나 무항생제 제품으로 속여 판매하는 사례도 다수 드러났다.

소비단계도 문제가 많았다. 정부합동점검단은 법령 위반이 의심되는 초·중·고교 274개를 선정해 조사를 벌인 결과 471건의 비위 행위를 적발했다. 심지어 식재료 제조업체 점검과정에서 학교급식 가공품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동원·대상·CJ프레시웨이·풀무원의 자회사 푸드머스 등 4개 업체가 2년 6개월간 전국 약 3000여개 학교 영양(교)사 등에게 약 16억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하는 학교와 업체간 유착 의혹도 확인했다. 학교급식 계약 부적정 사례가 202건이나 됐다. 예산집행 부적정(132건), 식재료 검수 및 위생관리 부실(119건)도 문제로 지적됐다.

급식비리 유형을 살펴보면 ‘천태만상’이 따로 없다. 부정입찰(263건), 한 사람이 타인 명의로 다수의 사업을 운영하는 공동관리(108건), 영업장없이 운영(53건), 타업체의 대리 납품(29건)은 물론 업체 계모임을 통한 입찰 담합, 불량 식재료 납품, 유령업체 설립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 건강한 급식, 식재료냐 식단이냐=‘건강한 급식’을 위한 기본 요건엔 흔히 네 가지가 꼽힌다. 좋은 식재료, 균형잡힌 영양, 조리와 위생이 조화를 이뤄야 최상의 급식이 태어난다.

이같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바람직한 급식’은 영양을 균형있게 공급하고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해야 하며, 급식을 먹는 대상자의 기호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급식의 위생, 경제적 상태를 고려한 식품비 등도 중요하다.

식단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있는 영양 공급이다. 이는 급식의 수준을 가름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권수연 호남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맛도 중요하지만, 맛 만큼이나 학교 급식은 영양섭취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면서 “영양섭취 기준은 법에도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은 특히 아침 결식과 패스트푸드 섭취 등으로 비만 발생률이 높기 때문에 균형잡힌 영양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미리 충남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이미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패스트푸드에 입맛이 젖어 고지방ㆍ고열량ㆍ고당ㆍ고나트륨 식사를 선호하는 추세”라면서 “편향되지 않은 식사를 위해선 어릴 때부터 입맛을 잡아주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학생들의 식습관 개선을 위해 학교에서의 교육도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김 교수는 “우리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에선 애들 입맛을 바꿔주기 위해 체험 위주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본인들이 직접 가꾼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들로 요리를 해 먹는 기쁨을 알다보면 자연히 채소도 맛있게 먹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양사가 직업적 소명의식을 갖고 건강한 식단을 제공하기까지 선제돼야 할 조건이 있다. 모든 음식의 기본인 ‘식재료’가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현장에선 강조한다. 실제로 부실급식이나 비리의 상당수는 ‘식재료’와 그것의 납품과정에서 빚어졌다.

대다수 학교에선 식재료를 구입할 때 입찰을 통해 중간업체를 거친다. 소비자의 손에 식재료가 들어오기까지 거치는 단계가 많다 보니, 비리가 개입해도 일일이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한 고등학교의 영양사는 “최근 문제가 된 급식비리 중엔 육가공업체가 음식으로 장난을 친 경우가 있었다. 제조업체이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가 확인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며 “소비자의 입장에선 믿고 쓰는 건데 이 같은 일이 빚어져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박인숙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대표는 “식재료 조달이 급식비리와 부실 문제의 원인이고, 그 다음이 조리과정이다”며 “급식비리나 불량급식의 개선은 개인적 노력이나 개별학교의 노력으론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기에 식재료 조달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급식비리 근본 원인은 식재료”…개선 방법은?=식재료 납품 과정의 한계는 현장에서 아무리 ‘건강한 급식’을 내놓으려 해도 조리, 영양, 위생에 앞서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데에 있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고등학교의 영양사는 “영양사의 양심도 중요하지만 누구도 건강하지 않은 급식을 내놓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며 “납품 과정에서 속이고 판매할 경우엔 아무리 좋은 식단과 영양을 맞춰 급식을 제공해도 헛수고”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 같은 이유로 공급업체의 자질 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을 요구한다.

특히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eaT)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지난 2012년 전자조달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각종 비리가 불거져 나온다는 시각이 많다. 이 시스템은 최저가격입찰제를 시행하는 전자입찰 프로그램으로, 모든 업체정보와 가격정보, 학교의 식단정보가 공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찰담합, 유령업체 비리가 드러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eaT의 경우 가격은 투명하게 공개하지만 비대면으로 이뤄지다 보니 품질에 대한 확인은 하지 못한 채 식재료를 구입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에 직면한다.

구희현 친환경학교급식경기도운동본부 대표는 “급식 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학교급식 지원센터를 만들어 직접 물건을 보고 품질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며 “농가와 계약재배로 가격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시스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조달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인숙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대표 역시 “전자조달시스템이 급식비리나 부실급식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학교 급식 지원센터와 같이 공공조달시스템을 통해 식재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공조달시스템은 지역 내에서 식재료를 조달할 수 있는 공공체계를 통해 사전 감시와 감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전국 64개 지방자치단체에서 학교급식지원센터라는 공적 조달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박인숙 대표는“무상급식 확대로 공공재원이 투입된 만큼 이제는 학교와 지자체, 지역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분립할 필요가 있다”며 “각종 비리에 대응하는 것을 학교의 몫으로만 돌리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와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를 통해 학교급식의 근본 문제와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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