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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도밭이 가장 중요하죠” 스페인 와인 명가의 조건 [베가 시실리아의 명가 원칙 ①]  
  • 2024.06.12.
베가 시실리아, 160주년 기념 와이너리 초청
스페인·헝가리 5개 와이너리서 경영 철학 고수

토양에 적합한 품종·수확량 제한·전통 재배방식
오랜 숙성 기간도 베가 시실리아 와이너리 특징

스페인 북서부 토로에 있는 핀티아 와이너리 포도밭. 토로=육성연 기자

[리얼푸드(스페인 리오하·토로·리베라델두에로)=육성연 기자] ‘결혼식 단골 와인’, ‘스페인의 로마네 꽁띠’. 스페인 베가 시실리아(Vega Sicilia) 와이너리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결혼식에 사용됐으며, 프랑스 최고급 와인인 부르고뉴 ‘로마네 꽁띠’에 견줄 만큼 명성이 높다.

베가 시실리아 초청으로 최근 방문한 와이너리에서는 스페인 와인 명가의 원칙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와이너리마다 지역적 특성은 달랐으나 ‘포도밭이 가장 중요하다’는 경영 철학은 동일했다. 지역 환경에 가장 적합한 포도 품종과 재배 방식을 연구하고, 수확량을 제한하는 등 재배 방식도 섬세했다. 베가 시실리아에 떼루아(Terroir·토양, 기후 등 와인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환경)란 그야말로 모든 요소를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와이너리 초청은 베가 시실리아의 160주년 기념행사로 진행됐다. 베가의 외부 공개가 매우 드물었던 만큼, 이번 공개는 국내 업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스페인 리오하(Rioja) 지역의 마칸(Macan) 와이너리였다. 현재 베가의 오너(소유주)인 파블로 알바레즈 가문은 지난 1982년 베가 시실리아를 인수한 후, 베가 시실리아를 중심으로 마칸과 알리온(Alion), 핀티아(Pintia), 헝가리 오레무스(Oremus)까지 총 5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마칸은 이곳에서 유래한 레드 품종 템프라니요(Tempranillo)만을 100% 재배하고 있다.

‘가지치기’ 재배법을 설명하는 마칸 와이너리 관계자(왼쪽). 살충제 대신 페로몬 주머니를 걸어 둔 포도나무. 리오하=육성연 기자

마칸의 라카노카(LA CANOCA) 포도밭에서는 ‘가지치기’가 가장 중요한 재배법이었다. 라카노카 관계자는 “보통 더 많은 포도나무 가지를 통해 수확량을 높이려 하지만, 마칸은 한 나무당 5개 가지만 나오도록 제한한다”고 했다. 한 뿌리에서 나오는 영양분은 한정되므로, 수확량을 제한하면 포도 한 알에 더 많은 양분이 응축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면적별로는 1ha(헥타르)에 약 4000㎏으로 생산량을 제한한다. 그는 “생산량 제한이 없으면 풀향이 강하고, 거친 탄닌(와인의 떫고 쌉싸름한 맛을 내는 성분)을 갖게 된다”며 “마칸은 부드러운 탄닌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적인 생산 방식도 눈에 띄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농부가 직접 곡괭이로 잡초를 제거한다. 심지어 옛날 방식대로 말을 사용해 고랑을 간다. 트랙터로 인한 밭의 손상을 막기 위해서다. 포도나무에는 살충제 대신 빨간 고리를 걸었다. 기생충 번식을 예방하려는 페로몬(동물이 분비하는 화학적 신호물질) 주머니다. 수확 때도 포도가 짓이겨지지 않도록 손으로 직접 작은 용기에 나눠 담는다. 고급 와인을 위한 수작업 방식은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었다.

장기 숙성 기간도 베가 시실리아의 특징이다. 이 관계자는 “마칸에선 14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오크통에서 숙성하고, 3년 정도의 병 숙성도 거친다”며 “전반적으로 숙성 기간이 매우 길다”고 했다.

마칸 와이너리 와인(왼쪽), 파블로 알바레즈 오너 가문의 베가 시실리아 인수 40주년 기념 한정판 와인. 리오하=육성연 기자

또 다른 와이너리인 핀티아는 토로(Toro) 지역에 있었다. 진한 레드와인을 생산하는 곳이다. 포도밭은 마칸보다 한 나무당 차지하는 자리가 넓었다. 토양이 다소 척박한 지역에서 수확량 대신 고품질을 택한 재배 방식이었다. 핀티아 관계자는 “한 나무에서 약 8㎏의 포도가 나오지만, 이 또한 엄선하는 과정을 거쳐 실제로는 3~4㎏만 사용한다”고 했다.

스페인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와이너리는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지역의 알리온이다. 양조시설에는 커다란 오크통과 스틸통이 늘어서 있었고, 포도를 잘 휘젓기 위해 개발된 특수 파이프도 보였다. 알리온 관계자는 “알리온은 새롭고 모던한 와인을 만들려는 베가의 프로젝트로 시작됐다”며 “와인 양조는 정해진 레시피가 따로 있지 않고, 포도 특성에 따라 블렌딩을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만 있다”고 전했다.

베가 시실리아 연구소 관계자는 “모든 포도밭을 세부적으로 나눠서 가장 적합한 재배법과 수확시기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탄생된 베가 시실리아 와인은 많은 양을 수출하지 않는다. 이 관계자는 “스페인에서도 많은 고객이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며 “2023년 전체 생산량 가운데 17%만 1456개국으로 수출됐다”고 했다. 아시아 지역으로는 수출량의 약 20%가 공급되고 있다. 국내에선 신세계엘앤비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알리온 와이너리 지하창고에 진열된 오크통. 리베라델두에로=육성연 기자
알리온 와이너리 지하 창고에 보관된 와인들. 리베라델두에로=육성연 기자

gorgeo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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