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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존에서 구입한 조립PC에서 상추와 바질이 자란다
  • 201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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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집에 있는 PFC(퍼스널푸드컴퓨터)로 상추를 길러 먹는데 쌉싸름한 맛을 원할 때는 푸른 조명을 쓰고, 달착지근한 맛을 낼 때는 붉은 조명을 써요”

세인트루이스 사이언스센터에서 만난 피터 웸 마스팜(Marsfarm) 대표는 자신이 제작 중인 PFC를 보여주며 이 같이 말했다. 

피터 웹 마스팜 대표가 자신이 제작 중인 PFC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PFC는 PC처럼 생긴 하드웨어 안에서 채소를 기르는 장치다. 전자레인지 2개 정도를 쌓아 올린 크기의 장치 안에는 조명ㆍ수조ㆍ공기팬ㆍ카메라ㆍ펌프 등의 부품을 비롯해 온도ㆍ습도ㆍ조도ㆍPH(산도) 등을 측정하는 센서가 장착된다. PFC 장치 안에 씨앗을 심으면 통상 한 달 내에 완전한 작물로 재배된다.

웹 대표가 보여준 PFC 안에는 이제 막 손톱만 한 크기의 육묘가 들어가 있었고, 푸른 조명 아래 각종 전선이 어지럽게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첫인상은 첨단 장비보다는 전자 장난감에 가까웠다. 

피터 웹 마스팜 대표가 세인트루이스 사이언스 센터에서 PFC 기술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제공=마스팜]


세련되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PFC는 현재 전세계 컴퓨터ㆍ전자공학도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확산되는 개발 아이템 중 하나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에는 이미 65개국 2350명이 참여해 PFC 제작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PFC는 기업형 식물공장과 달리 일반 가정집 등 사적인 공간에서 작물을 기르는 방식이라 개인화에 보다 집중됐다. 마치 DIY로 가구를 조립하는 것과 같은 형태다. 실제 PFC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은 모두 아마존, 이케아 등을 통해 공수된다.

PFC를 만드는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너드’를 지향한다. PFC를 연구하는 엔지니어들이 스스로 ‘너드파머’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셉 오브라이언 어반스페이스팜 대표가 자신의 지하실에 설치한 PFC를 보여주고 있다

이 너드파머들은 유독 세인트루이스에 폭넓게 포진돼 있다. 세인트루이스의 역사적, 경제적 배경 덕분이다. 세인트루이스에는 거대 글로벌 농업 기업 몬산토 본사가 있다. 몬산토는 존 F 퀴니가 1901년 세인트루이스에 세운 기업이다. 세인트루이스는 당시 미국의 식량산업, 농업의 중심지였다.

세인트루이스의 이 같은 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몬산토 작년 순매출액은 146억달러, 우리 돈으로 16조7000억원 수준이다. 세인트루이스 주민들은 대부분의 일자리가 몬산토에서 나온다고 입을 모은다. 

어반스페이스팜이 제작한 PFC안에서 바질이 심어진 모습


이 같은 환경으로 PFC또한 세인트루이스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다. 웹 대표는 “세인트루이스 젊은 엔지니어들부모 세대 상당수는 몬산토에서 근무한다”며 “컴퓨터와 농업이 결합한 PFC가 세인트루이스에서 활발히 연구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웹 대표의 아버지도 몬산토에서 일하고 있다. 웹 대표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파나소닉 자회사인 냉동시스템 제조사 허스만에서 비즈니스 개발 애널리스트로도 근무하고 있다.

또다른 세인트루이스 PFC 스타트업 어반스페이스팜의 공동창업자들도 공학도 출신이다. 조셉 오브라이언은 전자공학을 연구했고, 제임스 벨은 화학공학 분야 전문가다.

이들은 현재 보급형 PFC인 MVP((Minimal Viable Product) 제작을 완료했다. 여기서는 바질을 기르고 있다. 실제 기자가 오브라이언 집을 방문했을 때 그의 집 지하실에서는 PFC에 바질 종자가 심어진 상태였다. 부품, 양분, 소프트웨어 등 MVP의 전체 제작비용은 300달러다.

이와 달리 디자인은 물론 센서, 구동장치 등을 보다 고도화시킨 V2는 4000달러에 달한다. 어반스페이스팜은 V2 제작을 진행 중이다. 

세인트루이스 사이언스센터의 작물재배 전시실 내부 모습


PFC 제작을 통해 어반스페이스팜은 인도어팜(실내농장) 컨설팅 업무를 진행 중이다. 실제 이들은 인도어팜 설비업체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이와 함께 인도어팜 운영에 필요한 클라우드 데이터 분석 솔루션도 개발하고 있다. 오브라이언 대표는 “PFC를 제작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비즈니스모델로 구축할 계획”이라고설명했다.

반면 마스팜은 PFC를 활용한 교육사업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웹 대표는 “세인트루이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STEM 즉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엔지니어링(Engineering), 수학(Mathematics) 등의 과목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크레딧을 따야 한다”며 “여기서 PFC가 STEM과목에서 교재처럼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에 마스팜은 고등학교 선생들을 대상으로 PFC에 대한 교육을 진행 중이다. PFC를 조립하고 센서의 데이터를 분석하며 프로그래밍을 터득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STEM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세인트루이스 PFC 스타트업들은 지역 커뮤니티와의 협업에도 적극적이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PFC 관련 비즈니스를 보다 확대하기 위해서다. 마스팜과 어반스페이스팜 모두 세인트루이스 사이언스센터의 작물재배전시실(Grow Exhibition) 파트너사로 참여했다.

이곳에서는 아쿠아포닉스 방식의 작물 재배가 진행 중이다. LED 광원으로 빛에너지를 제공하고, 수조 아래서 물고기를 키우며 양분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여기서는 바질, 후추 등의 채소가 재배된다. 매디 어니스트 매니저는 “PFC 스타트업에서 관련 기술을 제공하며 작물재배를 모니터링해준다. 여기서 기른 각종 채소는 인근의 식당에 공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인트루이스)=정태일 기자/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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