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푸드=고승희 기자]입으로만 음식을 즐기던 시대는 지났다. 소비자들은 하나의 식품을 소비하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다양한 식음료에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재미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 기존의 식품을 해체하고, 재해석해 새로운 식품까지 만들어낸다. 이들이 바로 식품업계의 주요 소비계층이 된 이른바 ‘펀슈머’다.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은 2019년 푸드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펀슈머’를 꼽았다. 문정훈 푸드비즈니스랩 소장(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은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여러 감각이 동시에 채워질 때 더 큰 만족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재미와 즐거움을 공유하고 소비하는 고객들인 ‘펀슈머’가 식품업계의 중요한 소비자 층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들의 행동은 새로운 마케팅 방식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펀슈머는 ‘펀’(Fun)과 컨슈머(Consumer)를 합친 용어로,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에서 만든 신조어다. 펀슈머를 대상으로 한 상품의 특징은 SNS의 공유가 활발해 짧은 기간 내에도 입소문이 난다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많은 식음료가 펀슈머에 의해 태어나고, 펀슈머를 통해 입소문이 나며 식품업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새로운 식품에 열광하는 펀슈머를 겨냥한 식품들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식품기업들은 신제품을 출시할 때 기존의 익숙한 제품을 새로운 제형이나 맛으로 변화를 줘 ‘한정판’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은 우리나라 전체 식품군 가운데 제형의 변화가 일어난 제품들을 조사, 분석했다. 그 결과 원제품을 변형한 새로운 맛이나 형태의 신제품이 다수 출시됐다는 점이 확인됐다.
그 중 가장 활발하게 신제품이 출시된 분야는 빙과류였다. 빙과류의 경우 형태가 다른 빙과류나 음료, 캔디, 젤리로 제형을 달리해 출시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아이스크림인 돼지바가 돼지콘으로 출시된 사례다. 또한 죠스바가 젤리 형태로, 메로나가 음료로 출시되기도 했다. 기존 빙과류가 다른 빙과류로 변신한 사례는 전체의 44%나 차지했다.
원제품이 음료인 경우엔 58%가 빙과류로, 42%가 젤리로 변신해 펀슈머들의 마음을 훔쳤다.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이나 비락식혜 바, 비타500 젤리가 나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제품을 기발하게 변형해 색다른 재미와 맛을 준 제품들이 모두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이들 제품의 성공 비결은 ‘입소문’이다. 특히 SNS에서의 언급 횟수 등은 이 제품의 성패를 가른다.
빙그레의 스테디셀러 가운데 하나인 메로나는 출시 25년을 넘은 스테디셀러다. 이 제품은 메로나 보틀, 메로나 튜브, 메로나 음료 등 세 가지 제품으로 새롭게 출시됐다. 이들 신제품은 출시일 이후 SNS에서 총 6596회 언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제품은 기존의 빙과류를 변형한 신제품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또한 바밤바를 변형한 바밤바라떼, 누가바를 변형한 누가바라떼도 펀슈머 제품으로 인기를 모았다.
온라인에서 가장 인기를 모았던 ‘펀슈머’ 제품으로 서울대푸드비즈니스랩에선 액상형 요구르트를 변형한 젤리, 칠성사이다를 변형한 ‘사이다형 젤리’, 비타500을 변형한 비타500 젤리 등도 꼽았다.
펀슈머 제품은 소비자들의 창의성이 더해져 태어나기도 한다. 데이터 분석 업체 이노바 마켓 인사이트의 최정관 한국사무소 대표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비자의 반응과 알고리즘, 빅데이터 분석 등이 실제 새로운 제품개발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출시된 빙그레의 비비빅이 대표적인 사례다. 빙그레의 장수 아이스크림 비비빅은 온라인과 SNS를 통해 비비빅 팥죽 레시피로 재탄생해 숱한 화제를 낳았다. 이에 빙그레는 최근 한정판 ‘비비빅 동지팥죽’을 출시해 펀슈머들의 눈길을 끌었다.
문정훈 교수는 “소비자들은 맛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를 소비하고 공유한다”며 “처음 보는 제품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먹는 데에 그치지 않고 새로 경험한 제품의 후기를 적극적으로 올릴 뿐 아니라 제품을 색다르게 즐기는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유하며 식품업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