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뿐 아니라 무ㆍ청경채ㆍ냉이도 효능
-살짝만 익혀서 씹어먹으면 효과 증진
[리얼푸드=육성연 기자]“암에 걸리기 싫다면 하루 600g의 채소를 먹어라” 미국암협회(ACS)의 권장량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건강을 위해 권고하는 하루 과일·채소 섭취량(400g)보다 많다. 그만큼 암 예방 식습관에는 채소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채소 중에서도 십자화과 채소는 항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암협회는 정기적으로 십자화과 채소를 충분히 먹으면 암 유발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뉴질랜드의 오타고 의과대학 연구팀은 양배추등의 십자화과 채소들이 “웬만한 항암제보다 더 강력한 항암 효과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의 ‘암연구’ 저널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박유경 한국임상영양학회 암특별위원회장도 대한소화기암학회에서 “감자·고구마와 같은 뿌리채소보다 십자화과 채소의 항암 효과가 더 높다”고 설명했다. 4개의 잎이 십(十)자 형태를 이룬다는 뜻의 십자화과 채소는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대표적이지만 한국인이 자주 먹는 배추나 무, 냉이도 포함된다.
▶항암물질인 글루코시놀레이트 풍부=십자화과 채소의 강력한 항암 성분은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라는 생리활성물질에서 나온다. 섭취시 소화효소에 의해 분해되면서 설포라판이나 아이소티오시아네이트, 인돌카비놀3 등으로 변환된다. 가장 잘 알려진 설포라판은 지난 2008년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이 “암으로 발전되기 전의 세포를 죽이고 암세포 증식을 억제할 수 있어 암 예방에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외에도 혈당 조절과 유해물질 기능도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인돌카비놀3(indole-3-carvinol)성분은 대장암 예방과의 연관성으로 자주 언급된다.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에 따르면 쥐 실험결과 인돌카비놀3 물질이 염증 반응으로부터 장기를 보호해 장염과 대장암 발생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항암물질로 인해 국내외 여러 연구에서는 십자화과 채소의 섭취가 많을수록 유방암이나 신장암, 폐암, 위암, 난소암 등 각종 암 위험이 낮아진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유방암의 경우 환자의 생존률을 낮춘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암연구학회(AACR) 학술지에 실린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유방암 진단후 36개월 동안 십자화과 채소를 섭취한 환자는 사망 위험이 27%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다.
▶배추·무·냉이, 한국인의 밥상에 올려진 토종 십자화과 채소=한국인의 밥상은 항암 효과가 높은 십자화과 채소가 다양한 형태로 올려진 식단이다. 김치 배추를 비롯해 양배추찜이나 무생채, 그리고 된장찌개에 넣은 냉이까지 그 종류도 여러가지다. 채소 요리가 주특기인 한국인의 요리솜씨 덕분이다. 국제저널 ‘식품화학회지’(Food Chemistry)에 실린 농촌진흥청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이 매 끼니마다 김치로 먹는 배추(국내 배추 23개 품종)의 경우, 글루코시놀레이트 등 14종의 항암물질이 들어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광범위한 암 억제 효과를 지닌 ‘글루코브라시신’은 브로콜리(0.7㎎/g) 보다 많은 평균 0.8㎎/g이 나왔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결과는 국내 배추의 기능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킨 성과”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7년에는 농촌진흥청이 암 세포 및 피부 노화 억제 물질이 일반 배추보다 최대 20배 많은 ‘항암배추’를 개발하기도 했다.
배추뿐 아니라 소화에 좋다고 알려진 무 역시 ‘이소티오시아네이트’과 ‘글루코나스투틴’성분 등이 들어있어 발암물질 제거에 이롭다. 십자화과 채소와 관련이 없을것 같은 냉이 또한 배추, 무 등과 친척을 이루는 십자화과 채소이다. 냉이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십자 모양으로 생긴것이 증거이다. 냉이는 인체에서 비타민A로 전환되는 베타카로틴이 많아 눈 건강에 도움을 주면서 암 예방에도 이롭다. 폐암 환자 가운데 베타카로틴을 적게 섭취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사망률이 높게 나타났다는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연구가 있다.
▶항암 효과 높이는 조리법=전문가들은 십자화과 채소의 항암 효과를 누리려면 한꺼번에 많은 양의 섭취보다는 매일 꾸준하게 섭취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여기에 또 한가지 덧붙여진다면 조리법에 따라서도 효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글루코시놀레이트는 뜨거운 온도와 수분에 약한 성분이다. 물에 오래 데치면 효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강력한 항암 물질인 설포라판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채소 부위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배추에서는 항암효과가 큰 시니그린 (sinigrin) 성분이 잎줄기보다는 잎 가장자리, 녹색을 띠는 윗부분보다는 노란색의 아랫부분에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무의 경우에는 잎까지 함께 먹는 것이 더 좋다. 농촌진흥청 실험결과, 수확기 무의 잎은 글루코나스투틴이 무보다 2배 더 높게 들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경미 약학박사이자 더약솔루션 대표는 “항암과 노화억제 성분의 효과는 맞춤조리법이 포인트이다. 글루코시놀레이트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살짝만 데쳐서 먹거나 끓인 경우에는 물을 버리지 않고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십자화과 채소로는 브로콜리나 케일등이 잘 알려져 있으나 배추나 무, 냉이를 비롯한 한국의 토종 십자화과 채소도 암 예방에 훌륭한 채소”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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