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푸드=육성연 기자]식사를 마친 직장인이 동료 식사가 끝나기만을 멀뚱멀뚱 기다린다. 다른 이들도 곧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불과 10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놀랍지만 한국 식당이라면 가능하다.
한국인은 어딜가나 밥을 빨리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에서는 오랫동안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는 에스프레소를 원샷한 후 바로 나오지만 한국은 그 반대다. 후다닥 밥을 먹고 카페에서 긴 대화를 나눈다. 실제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8700명을 대상으로 조사(2015)한 결과, 10분 내 식사를 끝내는 사람은 52%로 절반이 넘었다. 반면 15분 이상 천천히 먹는 사람은 10%에 그쳤다.
시간을 아끼고, 동료와의 식사 속도를 맞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 몸이 가장 싫어하는 식습관은 한국인의 ‘광속 식사’이다. 소화가 잘 안되는 문제만이 아니다. 위염이나 성인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들도 나와있다. 더욱이 비만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다.
▶위염 위험, 최대 1.9배 높아져=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위염과의 연관성이다. 단지 밥을 빨리 먹었을 뿐인데 위장질환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은 왜일까.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씹는 과정을 통해 음식물이 부서지고 침이 섞이면서 소화효소인 아밀라제가 분비되는데 이는 1차 소화 기능을 맡는다. 하지만 음식을 빨리 먹으면 이런 과정이 부족해지면서 소화기능에 과부하가 걸리게 되고, 이로 인해 소화불량, 속쓰림, 위염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식사 시간이 15분 이내인 사람은 15분 이상인 사람보다 위염 위험이 최대 1.9배 높다는 국내 연구(2015)가 발표된 바 있다. 강북삼성병원 서울종합건진센터 고병준 교수팀은 1만 여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빠른 식사 속도가 과식으로 이어지고, 음식물이 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위점막이 위산에 더 많이 노출돼 위장관계 질환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고 교수는 “식사속도가 빠른 사람은 음식을 씹는 횟수와 시간이 적고 심리적으로는 스트레스 상태에 처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 지방간등 성인병 위험=위장 질환과 더불어 각종 성인병에 미치는 영향도 보고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 고병준 교수 연구팀이 식사 속도에 따른 비알코올성 지방간 발생을 분석한 결과, 식사를 5분에서 10분 사이 끝내는 사람은 15분 이상 천천히 하는 사람에 비해 지방간에 걸릴 위험은 41% 높아졌다.
다른 성인병의 위험도 높았다. 5분 내 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15분 이상 식사를 하는 사람에 비해 고지혈증 위험은 1.8배, 고혈당 위험은 2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날씬한 사람들일지라도 식사 시간이 5분 미만이면 지방간 발생 위험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식사를 빨리할수록 많은 양의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내장지방이 쌓이고 인슐린의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분석이다.
▶포만감 덜 느껴 비만으로도 연결=빨리 먹을 수록 살찔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는 식욕을 줄여주는 호르몬의 등장 타임이 생각보다 느려서다. 식욕 억제 호르몬이 그만 먹도록 뇌의 포만 중추를 자극하려면 15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고려대 안산병원 김도훈 교수팀이 877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2012)에 따르면 5분 내 식사를 마치는 남성은 15분 이상 식사를 하는 사람에 비해 평균 110㎉를 더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밥공기 3분의 1을 더 먹은 셈이다. 평균 체중은 4㎏이 더 나갔으며, 비만인 경우가 많았다. 연구팀의 김도훈 교수는 “빠른 식습관은 비만 위험을 높이고 중성지방 증가와 HDL 콜레스테롤 저하와 같은 이상지질혈증을 초래할 수 있다”라며 “이는 곧 혈관에 노폐물이 쌓이게 할 위험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천천히 오래 씹는 습관이 중요=단순히 식사시간만 늘려서도 안된다. 중요한 것은 음식물을 씹는 행위이다. 더욱이 ‘저작’(씹는 행위)운동은 포만감을 자극할뿐 아니라 뇌 건강에도 이롭다. 뇌로 가는 혈액 흐름을 도와 뇌세포에 충분한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치매 위험성도 줄어든다는 연구도 보고돼있다. 일본 규슈대 연구팀에 따르면 치아가 1~9개 있는 노인은 치아가 20개 이상 있는 노인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81% 높았다. 치아가 부족해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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