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부모님 덕 ‘가랑비 옷 젖듯’ 중식 입문
아서원 전통 주업림 셰프에 튀김 인정받아
새로 발굴한 임진강 참게 ‘해황소스’ 일품
중식 오마카세 ‘양장따츄’로 새로운 도전
더 플라자의 중식당 ‘도원’의 츄셩뤄 수석 셰프[더 플라자 제공] |
[리얼푸드=신소연 기자]특급 호텔 중식당의 효시인 더 플라자 ‘도원’은 한국 중식의 4대 문파 중 ‘아서원’의 계보를 잇는 주업림 셰프가 기초를 닦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7년부터 이곳의 주방장을 책임지고 있는 4대 수석 셰프인 츄셩뤄 셰프도 주 셰프가 그의 튀김 요리에 감동해 스카웃한 인재다. 열정적으로 음식을 튀기고 짜장면을 만들던 20대 청년이 도원으로 옮겨온 지 17년 만에 이곳의 수장이 된 것이다.
그의 요리 인생은 화교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시작됐다. 중국인인 부모님이 국공내전 때 한국으로 건너와 전북 익산에 정착하면서 생계를 위해 중화요리 식당을 열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럽게 요리가 그의 인생에 스며들었다. 그는 “부모님은 자식들이 자신과 같은 험한 길을 걷게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셨지만, 내게 요리는 일상을 넘어 업이 됐다”며 “중식을 전문으로 하는 내게 크나큰 축복이자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더 플라자 3층에 위치한 중식당 '도원' [더 플라자 제공] |
그의 도전은 27년간 살아온 익산을 떠나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중식당 만다린에 취직을 한 것에서 시작됐다. 츄 셰프가 인생의 멘토인 주 셰프를 만난 것도 바로 이 곳이다. 당시 도원의 수석 셰프이었던 주 셰프가 가족들과 식사차 만다린에 들렀다가 츄 셰프가 만든 탕수육을 맛본 후 그 자리에서 그를 스카웃했다. 그는 “주 셰프는 늘 ‘중화요리의 맛은 스피드’, ‘여러 번 간을 보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셨다”며 “불의 예술과 칼의 정교함이 만나 속도를 최고조로 올리고, 자신에게 믿음을 가져야 좋은 요리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츄 셰프는 요리가 과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처럼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끝 없이 발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요리가 과학과 다른 게 있다면 사람의 감성과 판단, 실력이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곧 요리’라는 음식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는 “좋은 재료를 고르는 지식과 트렌드를 읽는 눈, 연구하는 노력, 혀의 감각, 불 앞에 늘 설 수 있는 체력 등 나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 좋은 요리로 이어지는 귀결이다”고 말했다.
츄셩뤄 도원 수석 셰프가 고객들에게 음식을 내고 있다. [더 플라자 제공] |
그는 셰프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현장’을 꼽았다. 셰프에게 현장은 음식을 만드는 주방 뿐아니라 신선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시장도 포함한다. 그는 지금도 매일 밤 12시와 새벽 5시에 각각 노량진 수산시장과 가락동 농산·청과시장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간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신선하고 좋은 제철 식재료를 구하려면 재료가 있는 곳에 가서 직접 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아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시장에 가면 재료를 생산한 사람과 직접 산지에서 가져온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며 “재료들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는데다 신선한 제품을 직접 경험하면서 요리사로서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츄 셰프가 자신있게 추천하는 메뉴는 도원의 대표 메뉴인 불도장이 아니라 의외로 ‘해황’이라는 소스였다. 해황(蟹皇)은 황제들만 먹었다는 게 요리로, 중국 요리 중 따자시에(대갑게)가 원류다. 양청호의 민물 게를 잡아 만든 이 요리는 한때 중국을 대표할 정도로 유명했지만, 양청호의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지금은 맛보기 쉽지 않다. 그는 지난 2017년 도원의 총주방장을 맡은 후 식재료 개발 프로젝트인 ‘셰프 헌터’를 통해 해황소스를 복원했다. 임진강 상류에서 대갑게를 대신 할 참게를 발견해 이 소스를 다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해황소스는 셰프들이 일일히 게알만 골라 내 게향의 고소함과 진함을 가득 담긴 음식”이라며 “참게 농가로부터 독점 공급받아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원에서는 1년 내내 해황소스를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플라자의 중식당 '도원'의 코스 요리. [더 플라자 제공] |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중식 오마카세 ‘양장따츄’를 선보인 것이다. 계절·특수·현지·고급·희귀 등 5가지 테마 식재료로 메뉴를 구성했다. 이를 위해 전국의 식재료를 월 단위, 지역 단위, 생산자 단위로 리스트를 만들고, 전국 산지를 샅샅이 뒤져 밤새도록 메뉴 개발을 했다. 식재료 역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죽순, 해삼 등에서 벗어나 흑우, 무태장어, 산초잎, 옥돔, 고사리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했다. 그는 “양장따츄의 첫 손님이 매월 재방문 하며 이젠 오마카세가 아니라 양장따츄란 말이 더 유명해지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듣곤 뿌듯했다”며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해 도원을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최고 레스토랑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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