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푸드=육성연 기자] 유명 약과 구매를 위한 치열한 ‘약켓팅(약과+티켓팅)’ 경쟁이 온라인에서 펼쳐진다. 오프라인에서는 긴 줄을 기다릴뿐 아니라 아침 일찍부터 ‘오픈런(매장 개점 전 줄서기)’도 벌어진다. 약과에 푹 빠진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눈물겨운 ‘수고스러움’이다.
하지만 “이정도는 약과”다. 우리나라 약과 열풍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려시대 때는 ‘약과 열풍’이 아닌, ‘약과 대란’의 수준이었다. 당시 고려인들은 약과로 물가가 오르는 사태를 감내해야 했으며, 약과를 만들려면 제조 금지령을 어겨야 하는 위험도 무릅써야 했다.
우리나라의 전통 간식인 약과는 오래전부터 중요한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음식이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 따르면, 농경 발전에 따른 곡물 생산의 증가와 숭불사상(崇佛思想)에서 오는 육식 절제 등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한과류가 발달해왔다.
한과 종류 중에서도 유밀과(油蜜果)는 고려시대에 특히 발달했다. 유밀과는 밀가루를 꿀과 섞은 기름진 과자로, 유(油)는 참기름을, 밀(蜜)은 꿀을 지칭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약과이다. 약과는 밀가루에 꿀과 참기름을 넣고 반죽한 다음, 기름에 튀겨서 꿀이나 조청에 담궜다 꺼내서 만든다.
유밀과를 대표하는 약과는 제례, 연회, 혼례 등에 반드시 들어갔으며,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는 육류나 생선 대신 부처님께 공양하는 음식으로 사용됐다.
당시 약과는 가장 사치스럽고 최고급으로 꼽히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현재의 디저트들은 밀가루나 기름, 꿀 등이 흔하게 들어가지만, 고려시대에는 매우 귀한 재료들이었다. 기름진 맛이 풍겨내는 고소함에 달콤함까지 더한 약과는 고려인에게 ‘무척이나 맛있는’ 간식이었던 것이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은 “기록에 보면 약과는 고려시대부터 즐겨 먹었던 인기 디저트였다”며 “달콤하고 고소하고 맛이 좋아 고려인들이 굉장히 많이 만들어 먹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비싼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데도 고려인들이 약과를 많이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다. 나라 안의 꿀과 참기름이 동이 날만큼 약과를 만들어먹자, 물가가 오르는 현상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윤숙자 소장은 “고려시대 명종과 공민왕은 약과를 만들어 먹는 것을 형법으로 금했다”며 “약과를 만드느라 곡물, 꿀, 기름 등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물가가 올라 민생이 어려워졌다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해당 내용은 고려 역사를 139권에 담은 사서(史書), 고려사에 기록돼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1179년 명종 때 약과 제조 금지령이 내려졌으며, 명종 22년에 또 한번 금지령이 나왔다. 이후 1353년 공민왕 역시 약과를 만들어 먹지 말라며 유밀과를 형법으로 금했다.
고려인을 홀린 한국 약과의 맛은 중국까지 입소문이 났다. 윤 소장은 “외국에서 사신이 왔을 때도 반드시 약과가 상에 올려졌는데, 그러다 보니 약과가 맛있다는 소문이 중국까지 퍼졌다”며 “원나라 때 기록을 보면, 고려 약과를 ‘고려병’이라 부르며 그 맛을 아주 좋아하고, (고려인을) 부러워했다고 돼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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