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푸드=고승희 기자]태화강을 따라 화사한 벚꽃이 활짝 핀 봄날, 울산 중구에 위치한 작은 카페에선 자칭 “노벨평화상보다 더 위대하다”는 ‘환경 평화밥상’ 모임이 열렸다.
따스한 김이 피어오르는 갓 지은 현미밥에 씹는 맛이 일품인 버섯 탕수, 분홍빛 진달래 꽃을 장식한 샐러드가 곁들여졌다. 향기로운 냉이 된장국은 ‘화룡점정’이다.
“아유, 너무 예뻐서 먹어도 될 지 모르겠어요.” 평화밥상을 찾은 사람들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곳에선 그 흔한 고기, 생선, 달걀은 눈에 띄지 않는다. 후원받은 ‘디저트’ 역시 통곡물의 식감이 즐거운 ‘비건 쿠키’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차려진 ‘채식’ 한 끼다.
이영미(48) 채식평화연대 대표는 오전 10시부터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했다. 채식평화연대 회원 몇몇이 일손을 거들고,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했다. 환경 평화밥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채식 한 끼를 나누며 지구를 구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서다.
“먹는 것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에선 많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어요. 물론 하루 아침에 달라지진 않겠죠. 하지만 변화는 일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잖아요.” (이영미 대표)
어느덧 4년째다. ‘이름 없는 주부’였던 그는 회원수 200명의 채식주의자 단체인 채식평화연대를 이끌고 있다. 울산에서 이영미 대표를 만나 채식으로 변화시키는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 채식에서 ‘답’을 찾다=그의 20대는 치열했다. 이영미 대표는 그 시절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사회 문제, 환경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에스페란토 운동’(언어 패권주의에 반대하며 창안한 대안 언어이자, 국제적 소통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국제간의 이해와 평화를 추구하고자 만든 국제어인 에스페란토를 지향하는 운동)의 가치를 존중했고, ‘비폭력 평화세상’을 꿈꿨다. 그 시절 막연했던 가치에 대한 고민은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우리가 사는 책 한 권을 만들더라도 나무를 베어야 하고, 어느 곳 하나 화학 물질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잖아요. 답이 없는 고민 같았어요. 이런 부분이 때론 극단적인 염세주의로 이끌기도 했어요.”
한 때는 ‘문명의 이기’도 거부했다.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았고, 운전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된 이후엔 ‘부모로서의 한계’를 절감했다.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사회에서 아이들은 늘 경쟁을 하게 되잖아요.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뒤처지죠.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는 것이 평등하지 않고,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보다 ‘자연스럽게 사는 삶’, ‘자연에 가까운 삶’을 꿈꿨지만,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 교육과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2005년엔 귀농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한살림과 환경단체 등의 시민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가정에서의 변화가 시작이지만, 가정의 운동만으로는 세상이 바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다. 아이들에겐 더 나은 세상을 주고 싶었고, 세상이 내 아이의 부모가 되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채식을 시작한 것은 2011년 경이었다. 귀농한 의사의 제안으로 채식을 접했다고 한다.
“전에도 육식을 즐기진 않았어요. 가공식품은 거의 먹지 않았고, 자연식, 친환경 위주의 생활을 해왔죠. 채식을 시작하고 깊이 있게 공부를 하면서 제가 20대 때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게 대한 해답을 찾았어요.”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가치들은 식탁을 통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그는 “먹이사슬,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삶이 채식에 있다”고 봤다. 채식이 바로 ‘공존의 음식’이자 ‘평화의 음식’이라고 확신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 인간과 자연, 환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력 관계를 벗어났다고 봤기 때문이다.
“전쟁은 핵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육식을 통해 먹고 먹히는 것도, 가축을 키우기 위해 밀림을 파괴하는 것도 전쟁과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원하는 평화로운 세상, 폭력의 관계가 아닌 음식이 바로 채식이에요.”
▶ 채식 그 후, “환경에 덜 미안해졌어요”=채식평화연대는 채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회원들의 재능과 시간, 물질의 자발적 기부 등으로 운영되는 자율적인비영리민간단체(NGO)다. 국내 현미채식의 선구자로 불리는 황성수 박사를 비롯해 ‘농부 의사’ 임동규 등 전문가 집단은 물론 국내 굴지의 채식 동호회 등에서 고문과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2014년 채식평화연대 추진단이 꾸려졌고, 이 단체의 대표 역할을 하게 된 건 의외로(?) ‘평범한 주부’였던 이영미 대표다.
“엄마는 어찌 보면 가장 평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엄마가 될 수 있고, 주부가 될 수 있죠. 저와 같은 이름 없는 주부가 한 단체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상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엄마이자 아내였던 그가 완전 채식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어느덧 스물세 살이 된 큰 딸과는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귀농을 한 것도 아이에겐 문화 충격이었고, 자연식 위주의 식사를 해오다 완전 채식으로 돌아서니 엄마를 이상한 사람처럼 취급하더라고요. 그러다 성인이 되고,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다양성을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미국은 육식이 범람하는 사회이지만 ‘비건’을 존중하니까요.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가족들은 여전히 이 대표만큼 채식에 대해 절실하게 공감하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채식만으로 충분히 필요한 영양소를 채울 수 있다는 점을 공부를 통해 배웠고,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할 수 있다는 믿음은 주부이자 엄마인 그에게 확신을 줬다.
“예전엔 주부로서 풍족한 식사를 차려주지 않으면 죄책감이 생겼어요. 하지만 채식을 통해 부족함 없이 가족들의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엔 그런 마음이 사라졌어요.”
무엇보다 원칙이 있다. 채식을 하더라도 그는 ‘건강 채식’을 지향한다. 이 대표는 “자연식에 가까운 식품 위주로 먹고, 가공 채식은 피한다”고 말했다. 통곡물 위주의 식단에, 사람의 손을 덜 탄 음식으로 밥상을 차린다.
“비싸고 귀한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식이 아니에요. 가장 좋은 것은 덜 가공된 식품, 자연에 가깝게 먹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채식은 가난한 사람도, 아픈 사람도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에요. 요즘 온갖 슈퍼푸드가 범람하잖아요. 비싼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이 채식이 아니라 내 눈 앞에 보이는 흔한 것에서부터 채식을 시작할 수 있어요.”
채식을 시작한 이후 그의 삶엔 ‘긍정’이 넘치게 됐다. 치열하게 사회 운동을 하던 때엔 도리어 비관적이었지만, 이제는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채식을 하기 전의 저는 너무나 쓰레기를 많이 남기고, 환경을 해치는 존재였어요.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전에는 삶이 무기력했어요. 좋은 세상은 멀리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채식은 자체로 세상을 더 이롭게 할 수 있고, 먹는 것 자체가 바로 평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환경에도 덜 미안해졌죠. 지금 먹는 이 한 끼가 지구 환경을 지키는 데에 보탬이 된다면 그건 너무나 멋진 일 아닌가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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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김이 피어오르는 갓 지은 현미밥에 씹는 맛이 일품인 버섯 탕수, 분홍빛 진달래 꽃을 장식한 샐러드가 곁들여졌다. 향기로운 냉이 된장국은 ‘화룡점정’이다.
“아유, 너무 예뻐서 먹어도 될 지 모르겠어요.” 평화밥상을 찾은 사람들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곳에선 그 흔한 고기, 생선, 달걀은 눈에 띄지 않는다. 후원받은 ‘디저트’ 역시 통곡물의 식감이 즐거운 ‘비건 쿠키’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차려진 ‘채식’ 한 끼다.
사진1=2015년 창단, 각계각층 인사가 참여하는 전국 네트워크인 ‘채식평화연대’의 대표인 이영미 씨. |
이영미(48) 채식평화연대 대표는 오전 10시부터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했다. 채식평화연대 회원 몇몇이 일손을 거들고,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했다. 환경 평화밥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채식 한 끼를 나누며 지구를 구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서다.
“먹는 것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에선 많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어요. 물론 하루 아침에 달라지진 않겠죠. 하지만 변화는 일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잖아요.” (이영미 대표)
어느덧 4년째다. ‘이름 없는 주부’였던 그는 회원수 200명의 채식주의자 단체인 채식평화연대를 이끌고 있다. 울산에서 이영미 대표를 만나 채식으로 변화시키는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 채식에서 ‘답’을 찾다=그의 20대는 치열했다. 이영미 대표는 그 시절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사회 문제, 환경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에스페란토 운동’(언어 패권주의에 반대하며 창안한 대안 언어이자, 국제적 소통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국제간의 이해와 평화를 추구하고자 만든 국제어인 에스페란토를 지향하는 운동)의 가치를 존중했고, ‘비폭력 평화세상’을 꿈꿨다. 그 시절 막연했던 가치에 대한 고민은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우리가 사는 책 한 권을 만들더라도 나무를 베어야 하고, 어느 곳 하나 화학 물질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잖아요. 답이 없는 고민 같았어요. 이런 부분이 때론 극단적인 염세주의로 이끌기도 했어요.”
한 때는 ‘문명의 이기’도 거부했다.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았고, 운전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된 이후엔 ‘부모로서의 한계’를 절감했다.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사회에서 아이들은 늘 경쟁을 하게 되잖아요.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뒤처지죠.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는 것이 평등하지 않고,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사진2= 이영미 채식평화연대 대표는 “채식은 공존과 평화의 음식”이라고 말했다. |
보다 ‘자연스럽게 사는 삶’, ‘자연에 가까운 삶’을 꿈꿨지만,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 교육과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2005년엔 귀농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한살림과 환경단체 등의 시민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가정에서의 변화가 시작이지만, 가정의 운동만으로는 세상이 바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다. 아이들에겐 더 나은 세상을 주고 싶었고, 세상이 내 아이의 부모가 되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채식을 시작한 것은 2011년 경이었다. 귀농한 의사의 제안으로 채식을 접했다고 한다.
“전에도 육식을 즐기진 않았어요. 가공식품은 거의 먹지 않았고, 자연식, 친환경 위주의 생활을 해왔죠. 채식을 시작하고 깊이 있게 공부를 하면서 제가 20대 때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게 대한 해답을 찾았어요.”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가치들은 식탁을 통해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그는 “먹이사슬,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삶이 채식에 있다”고 봤다. 채식이 바로 ‘공존의 음식’이자 ‘평화의 음식’이라고 확신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 인간과 자연, 환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력 관계를 벗어났다고 봤기 때문이다.
“전쟁은 핵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육식을 통해 먹고 먹히는 것도, 가축을 키우기 위해 밀림을 파괴하는 것도 전쟁과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원하는 평화로운 세상, 폭력의 관계가 아닌 음식이 바로 채식이에요.”
사진3=지난 3월 말 울산에서 열린 채식평화연대의 ‘환경 평화밥상’ 모임 |
▶ 채식 그 후, “환경에 덜 미안해졌어요”=채식평화연대는 채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회원들의 재능과 시간, 물질의 자발적 기부 등으로 운영되는 자율적인비영리민간단체(NGO)다. 국내 현미채식의 선구자로 불리는 황성수 박사를 비롯해 ‘농부 의사’ 임동규 등 전문가 집단은 물론 국내 굴지의 채식 동호회 등에서 고문과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2014년 채식평화연대 추진단이 꾸려졌고, 이 단체의 대표 역할을 하게 된 건 의외로(?) ‘평범한 주부’였던 이영미 대표다.
“엄마는 어찌 보면 가장 평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엄마가 될 수 있고, 주부가 될 수 있죠. 저와 같은 이름 없는 주부가 한 단체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상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엄마이자 아내였던 그가 완전 채식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어느덧 스물세 살이 된 큰 딸과는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귀농을 한 것도 아이에겐 문화 충격이었고, 자연식 위주의 식사를 해오다 완전 채식으로 돌아서니 엄마를 이상한 사람처럼 취급하더라고요. 그러다 성인이 되고,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면서 다양성을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미국은 육식이 범람하는 사회이지만 ‘비건’을 존중하니까요.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가족들은 여전히 이 대표만큼 채식에 대해 절실하게 공감하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채식만으로 충분히 필요한 영양소를 채울 수 있다는 점을 공부를 통해 배웠고,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할 수 있다는 믿음은 주부이자 엄마인 그에게 확신을 줬다.
“예전엔 주부로서 풍족한 식사를 차려주지 않으면 죄책감이 생겼어요. 하지만 채식을 통해 부족함 없이 가족들의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엔 그런 마음이 사라졌어요.”
무엇보다 원칙이 있다. 채식을 하더라도 그는 ‘건강 채식’을 지향한다. 이 대표는 “자연식에 가까운 식품 위주로 먹고, 가공 채식은 피한다”고 말했다. 통곡물 위주의 식단에, 사람의 손을 덜 탄 음식으로 밥상을 차린다.
“비싸고 귀한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식이 아니에요. 가장 좋은 것은 덜 가공된 식품, 자연에 가깝게 먹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채식은 가난한 사람도, 아픈 사람도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에요. 요즘 온갖 슈퍼푸드가 범람하잖아요. 비싼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이 채식이 아니라 내 눈 앞에 보이는 흔한 것에서부터 채식을 시작할 수 있어요.”
채식을 시작한 이후 그의 삶엔 ‘긍정’이 넘치게 됐다. 치열하게 사회 운동을 하던 때엔 도리어 비관적이었지만, 이제는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채식을 하기 전의 저는 너무나 쓰레기를 많이 남기고, 환경을 해치는 존재였어요.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전에는 삶이 무기력했어요. 좋은 세상은 멀리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채식은 자체로 세상을 더 이롭게 할 수 있고, 먹는 것 자체가 바로 평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환경에도 덜 미안해졌죠. 지금 먹는 이 한 끼가 지구 환경을 지키는 데에 보탬이 된다면 그건 너무나 멋진 일 아닌가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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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