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철판요리’ 고정관념 깨…유럽 조리법 적용
‘소스 대가’ 최수근 교수 영향 소스·퓨레 강점
시원한 해장국 같은 ‘메로 빠삐요뜨’ 일품
이희준 그랜드 하얏트 서울 '테판' 레스토랑 헤드 셰프. [그랜드 하얏트 서울 제공] |
[리얼푸드=신소연 기자]‘테판야끼’ 하면 글로벌 체인 레스토랑 ‘베니하니’와 같이 일본식 철판요리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랜드 하얏트 서울이 지난 2016년 10월에 문을 연 레스토랑 ‘테판’의 요리는 일본식이라기 보다 유럽식에 가깝다. 철판에서 익힌 국내산 제철 재료에 유럽식 소스와 퓨레를 곁들여 내 한식에 유러피안을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듣는다. 이처럼 레스토랑 ‘테판’이 테판야끼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장르의 음식을 두루 접해 본 이희준 헤드셰프가 이곳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셰프는 테판야끼가 다른 요리들과 달리 식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고객들의 눈 앞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이런 음식을 만드는 테판 셰프들은 보다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엔터테이너’적인 자질이다. 그에게 테판은 소규모 공연장이고, 셰프는 그 공연장에서 음식에 대한 스토리를 전달하는 배우다. 더 직관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라면 화려한 불쇼도 거침없이 한다. 이 셰프는 “셰프는 레스토랑 방문 고객에게 감동과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며 “음식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이 완벽하게 전달됐을 때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희준 헤드 셰프가 테판 위에서 식재료에 고도주를 뿌려 불을 붙이고 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제공] |
이 셰프에게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를 묻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바로 간장이다. 간장은 종류에 따라 향과 맛이 다르고, 숙성을 시킬수록 깊은 맛이 난다. 테판 메뉴를 구성할 때도 간장으로 맛을 낸 요리는 ‘백전불패(百戰不敗)’였다.
그가 간장에 소위 ‘꽂힌’ 이유는 어머니 덕이다. 대학 근처에서 작은 백반집을 하셨던 어머니는 직접 담그신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으로 간을 맞춘 국물 요리를 잘 하셨다. 프렌치 요리부터 뷔페식까지 두루 섭렵한 이 셰프이지만, 솜씨좋은 어머니 영향을 받다보니 그의 요리 베이스는 한식이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가 야채와 소고기 뼈를 오래 끓여 간장과 청주로 간을 해 만들어주신 국물 면 요리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그 요리에서 영감을 받아 선보인 테판 요리 역시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서울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 자리한 레스토랑 '테판' 전경. [그랜드 하얏트 서울 제공] |
그는 또 테판 요리에 곁들여 내는 소스와 퓨레에도 일가견이 있다. 간장을 이용한 소스는 깔끔하고 개운한 맛을, 야채로 만든 퓨레는 아이스크림과 같은 텍스쳐와 맛이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이 셰프가 소스에 신경쓰는 이유는 그의 요리 멘토인 최수근 조리박물관장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스의 대가’로 불리는 최 관장은 이 셰프와 경희대에서 스승과 제자 관계로 인연을 맺었다. 그는 “대학 시절 교수님(최 관장)께 요리의 기술은 물론 사람들을 통솔하는 능력,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 등 셰프로서 가져야 할 자질을 많이 배웠다”며 “특히 사람에 대한 존중과 신뢰, 믿음이 주방에서 일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해 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 셰프가 자신있게 추천하는 요리는 바로 ‘메로 빠삐요뜨’다. 빠삐요뜨는 해산물이나 생선을 기름종이에 싸서 오븐으로 조리하는 요리인데, 테판에서는 이 요리가 오븐이 아닌 철판 위에서 익혀진다. 메로 빠삐요뜨는 특히 애주가들이 좋아한다. 다른 빠삐요뜨 요리와 달리 국물이 많아 해장국처럼 속을 단 번에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요리용 특수 필름에 싸서 조리되는 메로 빠삐요뜨. [그랜드 하얏트 서울 제공] |
국물 많은 메로 빠삐요뜨는 사실 이 셰프의 실수로 태어났다. 어느 날 메로 빠삐요뜨를 만들기 위해 요리용 필름에 재료와 소스를 넣는데, 실수로 소스를 만드는 육수를 정량보다 더 많이 넣어버린 것이다. 이미 들어간 육수를 빼 내지 못해 그대로 철판 위해서 끓였는데, 고객의 반응은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며 오히려 만족해 했다. 그는 주방에서 다시 실패한 레시피대로 이 요리를 만들어 내부 테이스팅을 진행했고, 셰프들 역시 만족해 레시피를 바꾸게 됐다. 그는 “우연히 하게 된 실수 때문에 테판의 시그니처 메뉴인 메로 빠삐요뜨가 탄생하게 됐다”며 “이후 실수를 했다고 자책하기 보다 더 깊숙히 파고드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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